'퍼펫' 인형으로 벤자민 세월 연출… 재즈클럽같은 무대·재즈풍 음악 매료
어긋나는 듯한 순간 속 사랑 노래 '뭉클한 감동'… 내달말까지 세종M씨어터
"나는 이미 늙어봤잖아. 난 주름살을 사랑할 줄 알아."
그의 시간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게 흘렀다. 쭈글쭈글한 주름살로 가득 덮인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젊어지는 기이한 삶을 산다. 아홉 살의 할아버지 벤자민은 그 이유와 답을 찾아 떠나고 싶었지만, 기차표를 끊을 줄 모르는 어린아이였을 뿐.
그런 그에게 노래하는 블루가 나타난다. 굴곡진 삶을 헤쳐나가면서도 그 안에 불안을 품고 살아가는 블루를 보며 벤자민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들 앞에 펼쳐진 생의 시간은 수많은 사건과 다양한 감정들로 채워진다.
F.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벤자민 버튼'이 관객들과 만났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은 시간과 세월을 초월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들로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단연 '퍼펫'을 꼽을 수 있다. 조광화 연출은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가 무척 매혹적이었지만, 전 연령을 보여줘야지만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며 "영국에서 '워 호스(War Horse)'를 보며 페펫도 생명체로 보일 수 있겠구나, 내면이 있고 감정이 보이는 인물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실제로 보기 전에는 퍼펫을 쓴 부분에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분장과 같이 다른 방법을 활용해도 시간의 흐름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퍼펫이 사용되는 장면들을 보면서 작품 속에 녹아있는 퍼펫의 존재가 컸음을 알게 됐다.
할아버지의 모습부터 갓난아이의 모습은 물론, 벤자민과 블루의 이야기를 동화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퍼펫은 적잖은 역할을 해냈다. 시선을 두는 방향, 눈을 깜빡이는 시점,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퍼펫의 얼굴에서도 표정 같은 것들이 희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은 마치 사람과 같은 완벽한 퍼펫을 앞세우진 않았다. 벤자민의 세월을 보여주는 장치이자 놀이의 장치로 무게감을 덜어낸 것.
조광화 연출은 "배우들이 나이를 표현하는 요소들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정서에만 몰입할 수 있게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하고자 하는 극의 느낌과 의미들이 와닿을 때마다 결코 쉽지 않았을 도전 또는 모험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더불어 재즈클럽을 옮겨놓은 듯한 무대와 곳곳의 디테일한 오브제들, 극에서 흘러나오는 재즈풍의 음악들은 작품의 매력을 높여줬다. 다만 벤자민 버튼의 삶을 압축시킨 듯 '엑기스'처럼 잘 정리되어 있는 스토리에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다.
극은 어쩌면 그들 혹은 나의 '스윗 스팟(sweet spot)'은 언제일까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듯하다.
반대로 흐르는 그들의 시간에서 자꾸만 어긋나는 것 같은 운명은 가혹해 보이지만,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갈수록 그들이 만난 후 생을 다하는 그 모든 시간이 사랑이었음을, 의심하고 엇갈리고 포기하고 또 기다려왔던 순간들이 그들에게 어쩌면 영원할 스윗 스팟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진심을 다해 인생을 노래하는 블루의 마지막 넘버에 귀 기울여 보시길.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6월 30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