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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법원 판결에 국민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서울고법 가사2부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 위자료 20억원과 재산분할로 1조3천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었다. 1심이 판결한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 665억원의 20배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이혼 금액이다. 대법에서 확정되면 최 회장의 SK 경영권이 흔들리고, 노 관장은 단숨에 여성 부호가 된다.

삼성가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부인 임세령씨에게 1천억원,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남편 임우재씨에게 141억원을 이혼 위자료로 지급했다. 탤런트 고현정이 정용진 신세계 회장에게 받은 이혼 위자료는 15억원에 불과했다. 재벌 2세들이지만 선대에게 물려받은 자산을 '특유재산'으로 인정받아, 재산분할 없이 위자료만 지급하고 배우자들과 갈라설 수 있었다.

역대급 재산분할 판결의 근거는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씨의 비자금 장부였다. 사돈인 고 최종현 전 SK 회장에게 비자금을 전달하고 받아 보관했던 300억원의 어음이 공개된 것이다. 재판부는 이를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으로 인정해 천문학적인 재산분할 금액을 정했다.

조 단위 이혼 금액의 화제성 만큼이나 찝찝한 여운이 큰 이혼소송이다. 최 회장은 2015년 한 언론에 혼외자의 존재를 알리며 이혼 계획을 밝혔다. 노 관장과 3명의 자녀들에겐 청천벽력이었을 테다. 이후 이혼 소송 중에 동거녀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개인의 이혼 리스크로 그룹마저 위기에 처했다. 집안의 능력자에게 경영을 맡겨 온 가문의 전통이 무색해졌으니, 선대와 당대의 집안 사람들이 땅을 칠 일이다.

노 관장은 승소했지만, 정의와 거리가 멀다. 부친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인정한 통치자금이 5천억원이다. 법원이 결정한 추징액은 2천628억원이고 이를 완납했다. 나머지 돈 중 300억원이 SK의 종잣돈으로 인정받아 그의 딸이 막대한 자산을 취득하게 됐다. 비자금 300억원이 몇십년을 지나 1조4천억원으로 깨끗하게 세탁된 셈이다. 이런 식이면 '김옥숙 장부'가 몇 조원 짜리 일지 가늠조차 힘들다.

이혼소송 과정에서 최 회장은 윤리적 책임에서, 노 관장은 비자금 불로소득의 정당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할 처지가 됐다. 상처뿐인 1조4천억원 짜리 이혼소송이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