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본선 진출작
모든 세대로 전가될 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고
1부는 사회 약자에 의존하는 생활 쓰레기 처리
2부는 청년의 시선 속 재개발과 건설 폐기물
“결국 도시를 버리게 되는 것”
인간 사회에서 더는 쓸모가 없어진 것을 일컫는 ‘쓰레기’. 수도권에서 나오는 대부분 쓰레기를 품고 있는 인천 서구 수도권쓰레기매립지 문제에 대해 최근에는 관심이 뜸해졌다. 환경부와 수도권 3개 시도가 수도권매립지의 ‘대체 매립지’를 찾는 공모에 나섰지만, 주민 반발 등으로 관심을 갖는 지역이 나오지 않고 있다.
왜 우리는 쓰레기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임기웅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문명의 끝에서’가 오는 5일 개막하는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이 다큐는 지난해 6월 뉴스타파 유튜브를 통해 40분 분량으로 공개됐는데, 이번 출품작은 70분 분량의 장편으로 확장했다.
생활 쓰레기가 발생하고, 끝내 수도권매립지로 향하는 과정을 담은 기존 1부와 함께 주택재개발 등 개발 사업에서 쏟아지는 건설 폐기물을 다룬 2부를 새로 볼 수 있다. 지난달 24일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 작업실에서 임기웅 감독을 만났다. 임 감독의 작업실 또한 공공 주도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이다.
임 감독은 “1부는 폐지 등 재활용품을 수집해 고물상에 파는 노인의 모습으로 시작해 노인층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이 주로 일하는 재활용 선별장 풍경, 해양 쓰레기로 어업이 어려워진 어민들처럼 사회적·지역적 약자에 초점을 맞췄다”며 “2부는 쓰레기 문제에 주목하는 청년 예술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모든 세대의 일임을 알리고, 너무 쉽게 철거되는 도시의 건물들과 결국 그 폐기물을 떠안아야 하는 문제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수도권매립지에서 생활 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20%다. 산업 폐기물이 30%이고, 나머지 절반가량은 건설폐기물이다. 건설폐기물의 경우, 90% 이상 순환 골재 등으로 재활용한 뒤 수도권매립지로 향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양이 매일 버려진다.
임 감독은 “2부에 등장하는 청년 예술가 중 한 명은 재개발 사업이 활발한 인천 서구 구도심에 살고 있고, 사업 찬반으로 갈등이 일어나는 동네 주민들, 오랜 터전에서 떠나는 주민들, 재개발 때문에 방치되는 기존 동네 등을 목격한다. 오랫동안 삶이 지속된 동네가 망가지는 것”이라며 “개발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건물이 철거되면서 나온 ‘문명의 끝’, 그 건설 폐기물을 줄이기는 어렵다”고 했다.
수도권매립지는 무한한 공간이 아니다. 건설 폐기물과 생활 폐기물을 비롯한 ‘쓰레기’가 포화하는 시점이 언젠가 도래할 것이며, 그 책임은 이후 세대에게 전가된다. 영화 속 청년 예술인이 “도시를 버리고 있다”고 한 경고가 인상적이다. 영화는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지만, 인천 등 수도권 일대 개발 방향이 ‘서울 쏠림 현상’으로 귀결된다는 메시지 또한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임기웅 감독의 ‘문명의 끝에서’는 지난해 한국독립PD협회의 ‘이달의 독립PD상’과 올해 초 ‘한국독립PD상 우수상’을 받았다.
오는 5일부터 30일까지 진행하는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는 전 세계 128개국에서 총 2천871편이 출품됐고, 예심을 거쳐 총 38편이 본선에 진출했다. 임 감독의 다큐 ‘문명의 끝에서’는 6일 메가박스 성수에서 오프라인으로 상영하며, 이날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12일까지 온라인으로도 상영한다.
인천의 도시·생태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기록해온 임기웅 감독의 다음 작업 구상은 서해 최북단 섬이자 철새들의 터전 ‘백령도’다. 백령도에선 2029년 완공 목표로 백령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임 감독은 “백령도에는 어마어마한 철새들이 오고 있고, 백령도 물범이 서식하는데, 공항 건설로 생태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기록하려 한다”며 “지리산 반달가슴곰 이야기에 대한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