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한국정치 교착상태 빠트려
대한민국, 국가체제 되돌아볼 시점
체제전쟁속 미봉적 대안 해결못해
공고히 하거나 새로 바꿔야할 상황
이른바 '87년체제'는 '권위주의체제의 종식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특징지어진다. 좌파들은 정치적 민주화가 급속히 진전된 반면 경제적 민주화는 지연되면서 보수적 민주화에 머물렀다고 평가한다. 우파들은 권위주의적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 힘의 균형이 형성되면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이행하였으나 이제 그 체제적 한계를 벗어날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한다. 체제의 보다 미시적인 특징은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통하여 지역이나 세대 등 다양한 사회균열에 기반한 할거정치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정치체제의 구조적 한계와 미시적 결함 등이 현재의 정치상황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87년체제'의 한계는 여소야대 혹은 여대야소 등 의회 내의 정파적 불균형이 심각해질 때 더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여당과 야당 간의 의석분포가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타협에 의한 국정운영이 시도되고, 외견상 원만한 민주주의정치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의 의석이 압도적이면 일방적인 독주로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야당이 압도적이면 체제작동의 병목이 발생한다. 특히 양극화된 정치세력이 민주주의정치의 요체인 '정치적 경쟁자(세력)에 대한 상대적 관용'과 헌법과 법률 안에서의 '제도적 자제'를 견지하지 않을 경우에 이러한 일탈적 양상은 더욱 심해진다. 권력의 집행권이 대통령과 수상에게 이원화되어 있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지만 국회해산권이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교착상태가 발생하는 경우 행정부와 의회는 각자 자기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87년체제'의 성립 이후 '3당합당'과 분당,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태가 간헐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통령 중임제는 현재의 정치체제가 갖는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헌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소수정당의 소멸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다당제의 활성화 역시 실현가능하고 의미있는 대안은 아니다.
일부 학계에서는 '87년체제'의 한계로 민주적인 사회경제적 대안의 미비, 민주화 패러다임 자체의 한계, 분단체제 극복의 미완성 등을 들기도 한다.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체제적 한계가 40여 년이 흐른 지금 체제 실행의 교착을 낳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혹은 사회민주적 복지국가체제의 위기와 변형, 그리고 1997년 IMF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을 목도하거나 직접 경험한 이 나라가 이제 그러한 체제실험을 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남북간의 체제대결과 북한의 핵개발, 최근에 이르러 북한에 의해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가 되어버린 남북관계의 상황에서 분단체제 극복을 논할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요컨대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체제와 정치체제를 다시 돌아볼 시점에 와 있다. 분단체제극복이 오로지 민족통일을 통해서 가능하고 현재의 국가는 미완성의 반국가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국가체제를 구성하는 헌정체제는 항상 불안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면,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거나 정치체제를 벗어나는 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체제전쟁 속에서 현재 거론되고 있는 미봉적 대안들이 이러한 체제정치를 해결할 수는 없다. 현재의 체제를 공고히 하거나 새로운 체제로 바꿀 국면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