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시작부터 네탓 공방 진흙탕
특검 대치 정점 정치 혐오감 증폭
'협치' 사치스러운 놀음으로 공격
'숙론' 가장 필요한 분야는 여의도
"소통법 배울 국회의원" 핀잔 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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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국립군산대학교 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22대 국회가 개원했는데, 시작부터 가관이다. 헌정 사상 처음 야당만 참석한 가운데 개원하고 국회의장을 선출했다. 절반 개원, 반쪽짜리 의장이다. 22대 국회가 얼마나 험난할지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야당을 향해 입법 폭주라고 비난하는 여당, 여당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야당이 뒤엉켜 난장판이다. 불과 수개월 전 총선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외쳤던 다짐은 공허한 말장난이 됐다.

요즘 신문 읽고 뉴스 듣는 게 우울하다. 여의도에서 연출하는 볼썽사나운 모습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무얼 하자는 담론 대신 온통 지난 과거를 놓고 누가 더 잘못했는지 진흙탕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부터 안보, 경제, 외교까지 현안은 산적해 있는데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만 한다. 국민들은 총선에서 협치를 요구했는데 소귀에 경 읽기다. 오로지 어떻게 상대를 절멸시킬지 혈안이 된 모습이다.

특검 발의에서 강퍅한 대치는 정점을 이룬다. 22대 국회 임기 1주일 만에 발의된 특검은 모두 5건. 단기간에 무더기로 특검이 발의되기는 처음이다. 특검 면면을 살펴보면 더더욱 기막히다. 모두 과거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김정숙 여사 호화 외유, 김건희 여사 의혹,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등이다. 특검은 진행 중인 수사가 미흡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경우다. 몇몇 사건은 공수처 수사 중이다. 여권이 정치적 목적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일상화된 특검은 특검이 아니다. 정치 혐오감만 증폭시킨다.

미래지향적 담론을 놔둔 채 누가 더 잘못했냐만 따지는 과거 싸움은 퇴행적이다. 이 정도면 국민에 대한 예의는커녕 정치 지도자로서 기본적 책무마저 저버렸다. 우원식 신임 국회의장은 합의된 기준 준수, 사회적 대화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회는 국민의 뜻을 실현하고 국민의 삶에 보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여야합의를 전제로 국민 의사를 대변하는 게 첫걸음이다. 국회의장 당적을 무소속으로 한 것 또한 이러한 정신에 부응한 것이다.

상대를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돌리는 여의도 정치에서 절실한 덕목은 협치다. 협치는 대화를 통해 도달한다. 지난주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에게 '숙론'을 선물 받았다. 최재천 교수가 쓴 신간이다. 저자는 토론은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허나 우리 토론 문화는 상대를 제압해 이기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최 교수는 싸우는 토론(討論) 대신 깊이 있는 논의를 의미하는 숙론(熟論) 개념을 제시했다. 옳은 것을 찾아가는 숙론을 통해 우리사회를 바꿔보자는 취지다.

이 차관은 복지부 간부들에게도 이 책을 선물했다. 이 차관은 책을 권하면서 "계장에서 과장, 국장, 실장으로 올라가면서 최상의 안을 이끌어내는 것은 중요한데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동료들이 자신처럼 생각하고 일을 해주는 게 진정한 리더십"이라며 토론 문화의 중요성과 숙론을 통한 리더십 확산을 강조했다. 어쩌면 숙론이 가장 필요한 분야는 행정부가 아니라 여의도 정치판이다.

정치인은 말을 통해 자기 생각을 관철하고 상대를 설득한다. 또 정당은 자유롭고 열린 숙론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점을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대와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치는 대화와 소통의 기술이다. 허나 숙론이 절실한 여의도 정치에서 대화와 소통은 실종된 지 오래다. 상대와 협치는커녕 당내에서조차 다른 의견을 봉쇄하고 있다. 여야할 것 없이 자신과 다른 주장을 '배신자'로 공격하는 지경이다. 나아가 협치를 사치스러운 정치놀음으로 공격한다. 이러한 풍토에서 성숙한 토론문화는 자랄 수 없고 적대감만 증폭된다.

정치가 실패하면 국가운영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신임 국회의장에게 권유한다. '숙론'을 읽고 여야 정치인들에게 권하길 바란다. "부끄럽지만 마주 앉아 얘기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사람들은 유치원, 초등학생이 아니라 이 땅의 국회의원들이다"라는 핀잔이 민망하다.

/임병식 국립군산대학교 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