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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팬텀'은 대한민국공군 역사의 분수령이다. 팬텀 도입 전까지 한반도 상공의 주도권은 소련제 미그기로 무장한 북한에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F-5였다. 프리덤파이터라는 별칭은 근사했지만 전투력은 떨어져 미공군은 훈련기로 활용했던 기종이었다. 그때까지도 우리 공군은 훈련기 몇대로 6·25 전쟁에 임했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월남전 참전 대가로 1969년 팬텀을 보유하면서 상황은 단숨에 역전됐다. 3세대 최신예 전투기의 안보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에 이어 4번째, 동아시아 최초 팬텀 보유국이 된 이후 대한민국공군은 북한 공군을 압도했고, 북한 공군의 영공 도발을 원천봉쇄했다. 국민들이 방위성금으로 직접 구매에 나설 정도로 팬텀은 자주국방의 핵심 전력이었다.

80년대 전투기 현대화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팬텀의 퇴역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예산 문제와 IMF로 지연되다가 2002년 F-15K 도입이 확정되면서 팬텀의 순차적 퇴역이 시작됐고, 2022년 국산 전투기 KF-21기 시험비행이 성공하면서 이번에 마지막 팬텀들이 퇴역한 것이다. 신흥 경제대국 대한민국이라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전투기 교체는 지난한 과업이다. 미국에서 80년대에 퇴역한 팬텀이 한국에선 노구를 이끌고 55년 임무를 수행한 배경이다.

지난 7일 수원 제10전투비행단에서 F-4팬텀 퇴역식이 거행됐다. 퇴역을 앞두고 지난달부터 영공을 순례한 팬텀이 이날 마지막 기지 비행을 마치고 영공 수호의 임무를 내려놓았다. 행사장의 호국영웅석엔 임무 수행중 순직한 팬텀 보라매 34명의 이름과, 추락한 팬텀 19기의 기체 번호가 적힌 안내판이 착석했다. 55년 동안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다 산화한 팬텀과 조종사들이다. '55년 팬텀'을 향한 공군의 애정이 절절하다.

"하늘의 도깨비. 굿바이 팬텀. 팬텀이여 안녕." 퇴역식에서 이재우 예비역 공군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팬텀에게 작별을 고했다. 55년 전 미국에서 팬텀을 몰고 온 청년 보라매는 자신 보다 한참 늦게 퇴역하는 팬텀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을 테다. 사물에도 사람의 혼이 깃들면 인격이 생긴다.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70년대 나라와 국민들의 자주국방 염원, 순직한 보라매들의 영공수호 의지가 깃든 팬텀이다. 팬텀은 퇴역했지만, 팬텀의 의미는 영원한 현역이어야 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