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paradox)은 어떤 주의나 주장과 반대되는 진술 또는 표면적으로는 모순되고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인 내용은 진리인 경우를 가리킨다. 논리학에서 역설의 사례로 활용되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이 있다.
크레타 사람 에피메니데스가 말했다. "모든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다." 이 문장을 가만히 살펴보자. 만일 에피메니데스의 말이 참말이라면, 모든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여서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다 거짓말이 된다. 그리고 이 말을 한 에피메니데스 역시 크레타 사람이기에 그가 한 말이 참말이면 그 말은 바로 거짓말이 된다. 반대로 이 말이 거짓말이라면 크레타 사람들의 말은 거짓말이 아닌 참말이 되며, 에피메니데스의 말 또한 거짓말이 아닌 참말이 된다. 그런데 이 말이 참말이 되는 순간 이 말은 다시 거짓말이 된다. 이처럼 참말과 거짓말이 서로 무한히 교차하며 반복되는 상황이나 사례를 패러독스 곧 역설이라고 한다.
요즘은 역설의 시대다. 역설이 돈이 되고 경제를 주도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가령, 가상화폐의 대명사인 비트코인은 실제 화폐가 아닌 화폐이며, 실제로 현금이 한 푼도 없는 세상에서 제일 큰 은행이기도 하다. 우버 택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택시 회사지만 정작 이 회사 소유의 택시는 한 대도 없다. 이뿐 아니라 페이스북은 가장 대중적인 미디어지만 스스로 생산해 내는 콘텐츠는 단 하나도 없다. 알리바바 역시 영향력이 큰 판매업체지만 상품의 재고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에어비앤비는 숙박업을 운영하면서도 정작 자기 소유의 호텔이나 숙소가 없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이들 업체는 역설을 잘 활용하여 돈을 벌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역설은 논리학의 차원에서 벗어나 경제의 영역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지나친 양적 완화 정책의 후유증으로 세계 경제가 고물가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으며,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값싼 러시아산 가스를 쓰지 못하고, 이보다 6배 이상 비싼 미국산 가스를 사용하는 바람에 살인적인 전기요금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동해에서 에너지가 펑펑 쏟아져 나와 물가도 잡히고 경제가 살아나는 행복한 역설의 시대가 열리길 고대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