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집단 성폭행' 법이 전과 세탁해준 셈
'SK그룹 이혼 판결' 정의 실현 해석 분분
대중 의심, 정의로운 판결로만 해소 가능
법관들의 소명의식이 어느때보다 무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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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2004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이 저지른 범죄는 엽기적이었다. 밀양의 남고생 44명이 울산의 한 여중생을 밀양으로 꾀어내 1년 동안 집단 성폭행을 가했다. 직접 성폭행을 저지른 44명 말고도 범행에 동조한 인원이 75명이다. 성폭행 범죄자 44명만 사법처리 대상이 됐지만 소년범이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면했다. 천인공노할 범죄 전과를 법원이 법대로 세탁해준 셈이다. 가해자들이 20년 만에 여론의 심판대에 올랐다. 유튜버들이 공개한 가해자들의 일상은 피해자의 인생을 박살낸 소년들을 지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평범했다. 평범한 얼굴의 악은 언제나 소름 돋는다. 피해자의 복구할 수 없는 피해와 가해자들의 평범한 일상. 선명한 명암에 대중의 분노는 짙어진다. 대중의 질문은 사법부를 향한다. 법은 정의로웠는가.

법원 판결이 대기업 SK그룹의 경영권을 흔들어놓았다. 최태원 SK회장과 부인 노소영씨 이혼소송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씨에게 재산분할금 1조3천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이 1심 판결 보다 모두 20배로 늘었다. 노씨의 부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 회장의 선친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비자금 300억원을 현 SK그룹의 종잣돈으로 봤다. 노씨의 모친 김옥숙씨가 장부에 보관해왔던 어음이 판결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노씨는 법원 판결에 반색했지만, 유책배우자인 최 회장은 반발하고, 최 회장에게 비판적이었던 유교적 대중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엇보다 환수됐어야 마땅했던 전직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300억원이 1조4천억원으로 세탁돼 자식에게 반환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다. 300억원을 2대에 걸쳐 성장한 SK그룹 전체의 종잣돈으로 판단한 것도 상식적인지 의문이다. 선경직물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SK에 이르기까지 최씨 일가의 사업 연대기는 공·사 영역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검은 돈 300억원이 SK그룹의 시원(始原)이라는 2심 판결의 법리가 정의 실현에 합당한지 판단과 해석이 분분한 배경이다.

최근 법원이 검찰이 청구한 가수 김호중의 구속 기간 연장을 허가했다. 지난달 경찰이 구속한 김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위험운전치상·도주치상,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사고후미조치,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단순 음주운전 사고를 중대범죄로 키운 자멸적 대응 과정은 구속 사유로 충분했지만 팬덤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김씨의 구속에 민감하게 저항했다. 그들에겐 불구속 상태에서 사법절차를 진행 중인 사례들이 허다했다. 불구속 상태로 1, 2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을 가결한 야당대표는 법원의 불구속 결정으로 총선 승리를 견인했다. 팬들이 김씨의 선처를 요구하며 조국, 이재명을 거론한 근거다. 사법 정의의 형평을 시비할 사례로 거론할 사법절차와 법원의 판례들이 산더미인데 정치인과 재벌들이 태반이다.

국가를 지탱하는 삼권 중에서 행정과 입법은 교체되는 권력으로 인해 안정성이 떨어진다. 행정과 입법의 평화로운 동거가 가능한 황금률은 가능하지 않다. 상호 견제가 없거나 지나쳐 불안과 혼란을 야기한다. 재판을 명예롭게 독점한 사법부가 중심을 잡아야 삼권분립을 지탱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사법의 권능이 추락하고 정의가 의심받는 시대이다. 밀양 사건처럼 글러먹은 법이 사법 정의 실현을 가로막는다. 법을 개정하고 제정하면 된다. 최태원-노소영처럼 사법부 내부의 견해차이로 사법 정의가 의심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판결을 검증하는 3심제 체계를 둔 이유이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존중하는 것으로 종결하면 된다. 김호중 사건이 걸린다. 사법 정의가 유권·유전과 무권·무전의 길목에서 갈린다는 대중의 의심은 이제 확신의 경지에 닿았다. 법 개·제정과 3심제로 거두어낼 의심이 아니다. 오직 공평무사한 사법절차와 정의로운 판결로만 해소할 수 있다. 사법이 삼권분립 국가 대한민국의 보루다. 법관들의 소명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