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고향집 회상 그리움 정갈
음역의 외연 넓힐수 있는 의미 지녀
단순한 양적 증가 방점 찍는게 아닌
'질적 재해석' 큰 기여 중요성 견지
미발표 유고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이것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 하는 반론도 있다. 시인이 시집을 낼 때 배제했거나 유보했던 것이니만큼 공개를 삼가고 최소한의 참고자료로만 써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물론 그 반대로 이런저런 사정으로 발표를 못 했을 뿐이니 발표에 준하는 위상을 부여하여 완미한 작가론에 당연히 활용해야 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가령 윤동주의 누이동생 윤혜원이 월남할 때 가지고 온 오빠의 창작노트는 윤동주 전집에 모두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윤동주가 자필 시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편제할 때 배제했던 것들이다. 그러니 박목월의 경우에도 친필 유고가 확실하다면 그것들을 박목월 연구의 중요 자료로 집성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동시'로 포괄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박목월은 이른바 '동요시'의 창안자로 유명하거니와 생전에 동시집 두 권을 냈을 정도로 이미 유명한 아동문학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찾은 '울타리'는 콩이 열리고 새알이 놓였던 고향집 울타리를 상상하는 회상 시편이다. 이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그 '소년의 꿈나라'를 밝혀주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정갈하게 다가온다. '하느님의 텃밭'은 텃밭에서 자라는 사물들을 통해 생명 가득한 자연을 그리고 있다. 땅 속에서 감자는 열두 형제가 주렁주렁 달려 자라고, 울타리에서 콩은 한 탯줄에 열두 형제가 조롱조롱 달려 자란다. 햇님이 나와 땅 속과 울타리의 아기들에게 잘 자라고 있느냐고 물으니 아기들은 밝게 대답을 하고, 햇님이 웃자 무논 개구리도 붓둑 까치도 함께 웃는다. 그 생명 공동체가 바로 박목월 버전의 '자연'이다.
나아가 신앙이 중요한 배경이 된 작품들도 많다. 가령 '빛'에서 시인은 '다만/당신을 향한/믿음과/참음으로 헤쳐가는 생활의 심연'을 고백하면서 '발돋움하는/신앙의 샘에서만 길어올리는/영혼의 해갈'을 꿈꾸고 있다. '찬가'에서는 겨레가 굴욕의 세월을 보내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뼈가 휘어지게 외로웠을 때 함께하신 신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십이월 십일'같은 작품에서는 '바다에도/눈은/제 스스로 무릎이 소실되는 내 운명과/같이/그렇게 무너지는 눈자락에 눈발' 같은 표현을 통해 고요한 자연을 그리던 목월의 모습을 뛰어넘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또한 전후의 폐허감과 함께 그 시대의 슬픔을 읽어낸 작품들이 눈에 띄는데, '슈샨보오이'는 'shoeshine boy'를 대상으로 하여 사람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노래한 것이 한껏 느껴진다. 박목월이 시대와 거리를 둔 시인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 자료들은 '육필'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박목월 음역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는 의미를 띤다. 하지만 단순한 양적 증가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질적 재해석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박목월은 노트에 초고를 쓴 뒤 나중에 원고지에 시를 완성하곤 했기 때문에 초고에서 완성본까지의 과정적 흐름을 알게 해주는 의미도 작지 않다. 돌아오는 14일, 5개 학회가 모인 공개 학술대회에서 이 유고들을 분류하고 분석한 결과들이 발표된다. 박목월 시 해석의 확장 가능성을 선보이게 될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