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인원·장비·시간 한정
정작 필요한 곳 투입 못할 수도
고발사건, 더 엄격한 잣대 필요
인지 구입처럼 비용 요구하거나
무고의 책임을 묻는 것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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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반려견 훈련사로 유명한 어떤 사람이 최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먼저 제기되었고, 이어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는 반박자료를 제시하며 변명에 나섰지요.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전직 직원의 응원 사격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반려견을 회사에서 안락사시켰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이를 본 현직 수의사는 반려견을 동물병원 밖에서 안락사시킨 수의사를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그러면서 반려견을 안락사시킨 수의사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지 약물을 재연하기까지 했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고발당한 수의사가 나섰습니다. 안락사를 시행하면서 마약류를 일절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면서 "자신은 오랜 기간 임상을 하면서 (마약류인) 프로포폴로 마취하고 안락사를 진행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실제로 안락사에 사용한 약물의 명칭을 공개하기까지 하였지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일이 터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연대', '△△연구소'와 같은 이름 모를 단체입니다.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단체임에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등장하는 단체입니다. 팬클럽도 아니고, 시민단체라고 보기도 어려운 정체 모를 단체들이지요. 그런데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어 보입니다. 바로 명칭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약한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좋은 말로는 '고발정신'이 투철하다고 볼 수 있고, 좀 나쁜 말로는 '관심종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은 남긴다'라는 오랜 교훈을 실천하는 단체라고나 할까요.

무분별한 고발은 사회에 손톱만큼의 이득도 없이 오로지 피해만을 남깁니다. 먼저 근거 없는 고발을 수사하느라 수사력을 낭비하게 되지요. 수사기관에서는 어쨌든 고발을 하였으니 고발인을 불러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발된 사람도 조사를 해야 하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참고인으로 지목된 사람도 조사해야 합니다. 수사가 끝난 후 보고서도 만들어야 합니다. 수사가 끝날 즈음에는 이미 아무도 관심이 없는 상태가 되어 고발 사건 자체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수도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고소, 고발사건의 기소율은 약 15% 내외입니다. 100건 중에 15건 정도만 혐의가 인정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통계는 범죄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고소 사건 수가 포함된 것입니다. 범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하는 고발만을 통계로 잡으면 기소율은 훨씬 더 떨어질 것이라는 뜻이지요. 수사기관이 고발 사건에 투자할 수 있는 역량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수사를 할 수 있는 인원과 장비,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정말로 수사가 필요한 분야에 투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사회적 이득 없이 해만 되는 고발사건을 수사하다가 정작 필요한 분야에 자원을 투입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분별한 고발로 인한 피해가 수사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고발정신이 투철했던 어떤 단체는 스스로가 국립호텔(?)에 투숙하게 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돈을 주지 않으면 고발을 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갈취한 사례가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보입니다.

고발사건에 대해서는 이제 좀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민사소송을 제기할 때 인지를 사서 붙여야 하는 것처럼 일정한 비용을 내도록 하는 것이지요. 또 언론이나 인터넷으로 돌아다니는 풍문만을 토대로 낸 고발에 대해서는 무고의 책임을 좀 더 엄격하게 묻는 것도 방법인 것 같습니다. 반려견을 안락사 시킨 수의사는 자신이 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습니다. "고발됐으니 조사는 받게 되겠지만 의미 없는 감정 소모가 안타까울 뿐"이라고요. 제발 의미 없는 감정 소모가 반복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