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교롭게도 15대 직후와 흡사
이재명 1인체제 굳건해진 듯하지만
내연한 갈등 언제 폭발할지 몰라
강렬한 사법리스크 대처 만만찮아
여의도 대통령은 부득불 이회창 전 신한국당 대표를 소환한다. 1996년 당시, 이회창 대표는 15대 총선 승리 후 지나치게 오만한 행보를 보인다.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듣게 된 이유다. 총선 패배와 각종 게이트 정국으로 레임덕에 빠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초라했던 위상을 생각해 보면 총선 승리에 취해 마치 대통령 당선인처럼 오만했던 이회창의 행보는 그런 구설에 휩싸일 만했다.
이회창의 당시 행보를 복기해 보자. 대통령이 주재한 전국 광역단체장 회의에 자당 출신 단체장들을 불참시켜서 '반쪽' 회의로 만들고, 청와대 영수 회담에서는 고령의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지나치게 고자세로 일관해 오만한 이미지를 굳힌다. 부인 한인옥 여사 역시 주변에 "하늘이 무너져도 집권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하니 내외가 동시에 경거망동했던 셈이다.
오만의 극치는 정치영역에서 도드라졌다. 당시 잠재적 우군이었던 김종필 자민련 총재에게 "숙이고 들어오라"는 식으로 거만하게 굴었다. 이후 김종필은 이회창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중립으로 돌아섰고, 이후 대선에서 충청표는 수도 이전 공약을 내건 노무현 후보에게 쏠리게 된다. 이회창은 기존의 특권층 이미지에 더해 대통령이 다 된 듯한 오만한 행보로 일관했고,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노무현 후보에게 반사이익을 가져다주는 빌미를 제공했다. 결국 이회창은 두 번째 대선에서도 패배한다.
연거푸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의 이후 정치 행보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선 후 불거진 차떼기 대선 자금 사건은 정치인 이회창의 정치생명을 끊어놓는 기폭제가 되었다. 오만했던 한 정치인의 말로가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
근래 이회창 전 대표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다. 2017년 유승민 전 의원의 대선 출정식 이후 무려 7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회창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사자들에겐 결코 달가울 리 없는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재등장한 데다 여당의 비대위원장 황우여는 이회창의 측근이었다. 와중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지구당 부활론을 꺼내 들었다. 지구당 폐지론의 기저에 이회창의 차떼기 대선 자금 사건이 깔려있음을 모를 리 없는데도 말이다. 혹여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정치적 뿌리가 이회창 전 대표에 닿아있는 건 아닌지, 문득 모골이 송연해진다.
전술했던 바,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말에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 원 구성 협상에서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이회창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움으로써, 그의 정치적 말로를 예감케 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작금의 정치 현실은 공교롭게도 15대 총선 직후의 상황과 흡사하다. 다수 의석을 점한 민주당으로선 되레 더 경계하고 긴장해야 할 상황이다.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허장성세를 누릴 겨를이 없다. 얼핏 이재명 1인 체제가 굳건해진 듯하지만 내연한 갈등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우군으로 보이는 군소 야당이 계속해서 우군으로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서서히 그리고 강렬하게 목을 조여오는 사법 리스크에 대처하는 일만도 만만치 않다. 이 대표로서는 살얼음 위를 걷는 형국이다.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 이유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