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인사 책 대출 거부
시대의 지성·철학 사상 파괴 같아
경기도교육청 성평등·성교육
책 폐기 사건 중요하게 보는 이유
최근 1년간 경기도 내 학교도서관에서 2천500여 권의 성평등·성교육 관련 책이 대량으로 폐기되었다. 사건은 지난해 '청소년 유해 도서를 분리해달라'는 보수단체의 민원에서 시작된다. 민원 접수 이후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협의해 조치하라'는 공문을 2차례 보냈고 올해 3월에는 '(폐기)처리된 도서 집계 목록을 제출하라'는 공문으로 책 폐기 여부를 확인했다. 지속적으로 공문을 받은 학교들은 결국 책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문제가 되자 경기도교육청은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내려온 교육청의 공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학교가 어디 있겠는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한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청에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점이다. 폐기된 성평등·성교육 도서는 국제인권규범에서 필수적이라 하는 포괄적 성교육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성평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중에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 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국내 도서 전문 단체 추천 도서, 세종 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도서도 포함되었다. 출판업계에서 우수하다는 책들이 경기도 학교 안에서는 불온한 도서들로 분류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갈수록 차별과 혐오가 깊어지는 시대에 성평등을 교육하는 것은 교육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온라인 매체를 통해 음란, 유해물을 손쉽게 접하게 되는 요즘 시대에 성교육이 제대로 잘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소중한 교육의 가치를 담은 책을 도서관 밖으로 밀어내 버린 경기도교육청은 과연 교육기관으로 자격이 있을까. 책의 폐기로 아동·청소년들은 성평등·성교육을 받을 권리, 책에 담긴 주요 정보에 대한 알권리를 침해당했다. 교사들은 교육청의 지속적인 공문과 폐기 여부 확인, 계속되는 민원으로 현장에서 존엄하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인권을 앞장서서 실현해야 할 경기도교육청이 오히려 아동·청소년·교사의 인권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책의 폐기는 책에 담긴 정보, 사상, 철학과 책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노동, 책을 사기 위해 들어간 지역민의 세금, 종이를 만들기 위해 베어진 나무의 가치 등 수많은 의미와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과연 경기도교육청은 그 무거움을 알고 있을까. 더 우려되는 것은 이 사건이 경기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충청남도에서는 공공도서관에 있는 성평등·성교육 도서들의 열람 제한 사건이 있었고, 서울과 인천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먼 옛날 진시황의 분서갱유부터 히틀러 나치 정권의 책 태우기, 최근 홍콩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책을 대출 거부한 사건까지. 책을 폐기한다는 것은 시대의 지성, 철학과 사상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경기도교육청의 성평등·성교육 책 폐기 사건을 중요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성평등·성교육 책들이 사라진 도서관, 그 텅 빈 공간과 텅 빈 교육의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 것인가.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