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품는 흙인 듯, 그 오래된 가치를 빚다
전통 기반하며 '도전' 韓도예 가야할길 질문
잇다·구하다 등 3섹션 나눠 작품 51점 소개
끝없는 탐색·탐구 공통점 지녀… 30일까지
오늘날의 도자예술은 그 영역이 확장되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워졌다. 흙을 다룬 여러 예술의 형태와 모호한 경계 그 어느 선에서 앞으로 한국도예는 과연 어디로 향해야 할까.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도예에서 다양한 실험과 도전으로 이뤄진 도예까지 아우르며 한국도예가 가야할 길을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전시 '자가처방-한국도예'가 경기도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라트비아 도자비엔날레 국가초대전의 국내 앙코르 전시로,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통해 도예를 이끌어가는 원동력과 가치를 들여다보며, 그 미래까지 함께 그려보게 한다.
전시는 '잇다'와 '구하다', '말하다' 모두 세 섹션으로 나눠 16명의 작가 51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는 전통에 대한 사유, 재료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다루는 방법, 작가들이 하고 싶은 말들이 도예로 어떻게 구현이 되는지 등을 통해 외부의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한국도예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구하다'에서 볼 수 있는 박종진 작가의 '아티스틱 스트라텀-패치' 시리즈는 여러 색을 입힌 종이를 접고 쌓아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냈다. 흙물을 입혀 가마에서 구워내면 안에 있던 종이는 타서 사라지고 그 형태를 간직한 도자가 남는다.
종이가 켜켜이 쌓였던 모습은 오랜 세월을 간직한 지층의 단면 같기도 한데, 변화를 담은 시간의 변화, 기억과 실존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배세진 작가의 '고도를 기다리며(WFG)' 시리즈는 도자의 모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듯 작은 점토 조각들로 이뤄져 있다. 이 조각에는 번호가 새겨져 있는데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이 34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희곡작품 '고도를 기다리며'가 고도가 아닌 기다림의 행위에 집중하듯, 작가 또한 느리지만 정진해 나가며 시간을 기록한다.
'잇다'에서는 김익영 작가의 가장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백자를 만날 수 있다. 전통에 대한 오랜 연구로 제작된 작품들은 고령의 나이에도 작업실을 꾸준히 나가는 작가의 식지 않는 열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물확', '순백보' 등 작품에 보이는 절제된 비스듬한 면들은 생동감을 더한다.
김정옥 작가의 작품에는 한국적 정서가 담겨있다. 전통기법과 어우러지는 세련된 색, 형태,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들이 색다른 감상을 준다. 분청사기 기법으로 장식한 여러 개의 도자 베개, 은은한 달빛이 문살에 비치는 모습을 표현한 병풍, 의리와 절개를 상징하는 기러기 떼까지 전시돼 있다.
전시자 중앙에 무리지어 걷고 있는,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여성들의 '행렬'은 한애규 작가의 작품이다. '말하다'에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칼과 병, 알 등 사물을 안고 길을 떠나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 적은 인류의 역사에서 이들의 이동과 이주라는 화두를 던지며 존재에 대한 새색과 인문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김정범 작가의 '수호자'는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와 도자에 중요한 재료로 쓰인 코발트를 사용한 작품이다. 마치 사막과도 같은 곳에 있을 것 같은 동물의 뼈 그 주위에 놓여진 꽃,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의 형태에 그려진 추상적 무늬들은 삶과 죽음과 자연의 관계를 연결지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쉬지 않고 도자예술에 전념하며 끊임없이 탐색하고 탐구하는 것에 있다. 이것은 어떤 정해진 답이 아닌,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계속해서 나아가기 위한 집요한 예술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전시를 기획한 최리지 학예연구사가 작가들의 이름 앞에 적어놓은, 그들에게 바치는 듯한 짧은 문구는 더욱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