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돔 전광판에 '레전드' 이승엽
부러운 것은 남녀노소 다양한 팬
그라운드 보며 경쟁과 노력 배워
한때 담배·소주병… 사회 변화도
남은 버킷리스트는 메이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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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야구를 좋아한다. TV중계보다는 '직관'이 더 좋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이 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에너지 절약 시책으로 야간경기는 외국팀이 내한할 때만 허가되었다. 한미대학야구대회로 기억한다. 밤의 야구가 너무 궁금했다. 혼자서 서울운동장 야구장을 찾았다. 수원역에서 전철을 타고 동대문역에서 내려 야구장까지 걸어갔을 것이다. 야구장은 대낮이지만 조명탑 밖은 완전 어둠이었다. 낮과 밤의 공존을 목격했다. 1978년도의 일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프로야구를 직관했다. 여자친구와 자주 갔다. 그렇지만 편하게 가기는 어려웠다. 대학가에서는 군부독재 저항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프로야구는 우민화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학생회 행사를 빼먹고 야구장에 간 적이 있다. 그것을 알게 된 선배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 기억도 있다. 주변 친구들에게 야구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없는 시대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정상급 선수들이 일본으로 진출했다. 방송을 통해 그들의 활약을 간혹 보았다. 직관 생각을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야구 보러 일본 가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사치로 여겼었다.

2024년 환갑을 맞이했다. 지난 삶에 후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예전에 못간 일본 야구장이 항상 아쉬웠다. 엔화도 싸다고 하니 바로 실행하기로 했다. 비행기표, 숙소를 예약하고 도쿄돔 입장권을 예매했다. 홀로 외국 여행은 처음이었다. 많이 설레었다. 드디어 TV에서만 봤던 도쿄돔에 도착했다. 마침 요미우리 '레전드 주간'이었다. 요미우리의 4번타자였던 이승엽 선수의 축하메시지가 전광판에 흐르고 있었다. 행운이었다. 선수일 때 못 본 그를 도쿄돔의 전광판에서 만났다. 수원의 초등학생 꼬마가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느꼈던 감동을 60대 할아버지가 되어 도쿄돔에서 다시 경험했다.

일본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도쿄돔의 수용인원은 5만명이니 관중은 우리보다 훨씬 많다. 경기력도 한 수 위다. 수비는 압도적이다. 기본기가 충실해서 실책을 보기 힘들다. 타격은 적극적이다. 범타를 친 후에도 전력질주다. 설렁설렁 플레이하는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투수는 관중석과 그라운드의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 관찰할 수 없었다. 우리에 비해 응원의 역동성은 떨어진다. 우선 응원석 위치가 다르다. 그곳은 외야에 있고 응원단상도 따로 없다. 거기에도 치어리더가 있고 관중의 호응도 크지만 그들은 입으로 응원하고 동작도 단순하다. 남녀 모두 몸으로 응원하는 우리와 다르다. 공수교대의 짧은 시간에 '키스타임' 같은 관중참여형 이벤트를 도쿄에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부러운 것은 팬층이다.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 홀로 온 사람도 많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의 팬층도 과거에 비해 넓어졌지만 청년들이 주축이다. 그들이 나이 들어도 야구장을 계속 찾을지는 의문이다.

50년동안 야구장에 다녔다. 야구장은 선수와 팬들이 함께 호흡하지만 펜스와 그물을 통해 그라운드와 관중석이 구분된다. 그라운드를 보면서 경쟁과 노력의 의미를 배웠다. 신인의 등장, 성장을 통해 희망을 보았고, 한 때는 핵심이었으나 노쇠하여 쓸쓸하게 은퇴하는 선수들에게는 연민의 정을 느꼈다. 초기에는 매일의 승패에 집착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3연전을, 한 시즌을 그리고 지금은 팀의 세대교체에 관심이 크다. 관중석에서는 사회의 변화를 보았다. 예전에는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중년 아저씨들이 많았다. 운동장으로 소주병을 투척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야구장 그물에 기어 올라가는 사람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응원문화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337박수가 주류였다. 지금은 춤과 노래가 어우러져 있다. 그러한 변화가 K-팝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어려서부터 보아 온 야구가 앞으로도 좋을까. 더 이상 재미 없어지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도 가끔 한다. 도쿄돔 버킷리스트를 달성했으니, 앞으로는 무엇이 남았을까. 그렇다. 이제는 김하성과 이정후가 활약하는 메이저리그다. 노년에 할 일이 생겼다. 그러면 앞으로의 삶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