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희망재단' 이사장 박세리의 기자회견이 화제다. 지난 11일 재단이 박세리의 부친 박준철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는 충격적인 뉴스에 여론은 경악했다. 박세리가 누군가. 1998년 극적인 US오픈 우승으로 IMF사태로 주눅든 나라와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준 골프여제다. 운동권 가요 '상록수'가 그녀의 맨발투혼 영상에 흐르자 제2의 애국가가 됐다.
골프 영웅 박세리는 자신의 영웅으로 늘 아버지 박준철을 지목했다. 육상선수였던 딸의 골프 재능을 발견해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였다고 했다. 박세리는 LPGA 투어 첫 우승 직후 아버지에게 전화해 "아빠 좋지"라고 자랑했고, 박준철은 은퇴 경기를 마친 딸을 꼭 안아주었다. 박세리가 한국 골프 역사를 창조한 영웅이라면, 박준철은 미국 언론도 대서특필한 한국 골프대디의 효시였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통찰은 언제나 무섭다. 침묵하던 박세리가 18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고소를 주도했다고 인정했다. 아버지의 빚을 수차례 변제하며 남 몰래 속을 끓였던 심정도 밝혔다. 아버지의 개인 빚이라면 계속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버지가 선을 넘었다. 공익재단의 인감을 위조해 국가 공공기관의 사업을 기만했다. 딸이 아니라 공익재단의 대표로서 아버지의 범죄 행위에 대응해야 했다.
박세리는 기자회견에서 LPGA 무대를 지배했던 멘탈을 보여줬다. 기자들의 질문에 사실과 심경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밝혔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아버지로 인한 또 다른 사건과 피해 방지를 위해 부녀간의 경제적인 분리를 선언했다. 그런 박세리가 "이런 일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는 박 프로의 모습이 참 안타깝다"는 기자의 질문에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질문이 아니라 박세리의 기막힌 처지에 대한 위로에 가까웠다. 그녀를 위로하는 시청자들의 댓글이 쏟아졌다.
이날 박세리 기자회견은 성공적인 공인의 기자회견 사례로 남을 듯하다. 이제 언론과 대중의 차례다. 공적인 지위 때문에 아버지를 고소한 박세리다. 딸로서 말 못할 정도로 괴로운 심정일 테다. 다시 거리를 두고 박세리의 행보를 지켜보는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그녀의 인생을 희극으로 감상할 수 있고, 그래야 영웅 박세리를 간직할 수 있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