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전담수사팀' 마련 촉구
간절한 마음에 제보한 증언 '외면'
상실감 속 고소접수 한계 '이중고'
"(경찰에)증언을 제보했더니 '굳이 거기까지 가셔야 하느냐'며 되묻고, '찌라시는 얘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수원 전세사기 피해자 이모씨는 19일 "가장 믿어야 할 건 경찰이라고 생각했는데, 귀 닫던 경찰들의 태도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도합 320억원대 전세사기 총책으로 의심되는 강모씨 소유 다세대주택 세입자다.
강씨는 이미 10억원대 보증금 미반환 혐의로 실형이 선고됐는데, 이후에 밝혀진 수백억대 사기 의혹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단계다. 연루된 '바지 임대인' 규모는 나날이 늘고 있고, 일당 일부는 일찍이 해외로 도피해 10개월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씨는 "우리는 간절하다. 어쩌면 경찰보다 피해자들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수도 있다"며 "그런데 귀 닫고 눈 가리고 어떻게 제대로 된 수사를 한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를 비롯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일상을 앗아간 상실감에 더해 자신의 피해를 수사기관에 직접 납득시켜야만 하는 '이중고'를 한목소리로 호소하고 있다. 이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경기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에 전세사기 '전담수사팀'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피해자 대표 발언자로는 이씨가 거주하는 수원뿐만 아니라 화성, 평택, 광주 등 최근 신고가 빗발치고 있는 경기남부권 주요 피해사례 대표자 5명이 나섰다. 이들 임차인들은 각 수사기관에 고소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한계와 답답함을 입을 모아 털어놨다.
광주 지역 피해 임차인 대표 A씨는 "경찰이 '피해자가 많은 건이니 피해자를 더 모아서 진행할 거다. 그래야 더 크게 처벌할 수 있다'고 했는데, 도대체 몇 명의 피해자가 더 발생해야 수사를 할 것인가. 피해자가 한 명이면 수사 안 해도 되고 수십, 수백 명이 되어야만 수사를 하는 것이냐"며 "국가가 인정한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가해자를 즉각 소환해야 한다"고 했다.
수원에서 67억원대 전세사기를 벌이고 해외로 잠적했다가 최근 세입자의 신고로 국내에서 검거된 정모씨 관련 피해자도 발언대에 섰다.
정씨 피해자 대표 박모씨는 "우리는 피해자다. 도움을 받아 사기행각을 벌인 인물을 알아내도 부족한 판에, 피해자가 생업을 포기하고 잠을 포기하며 사기꾼들의 사기행각을 알아내야만 하는 이 상황이 너무 분하고 속상할 뿐"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각 지역에서의 산발적인 수사 체계를 벗어나 전담수사팀을 중심으로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경찰에 전달할 예정이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각 사건마다 일선 경찰서에서 전담팀을 편성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입장을 들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