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혜장선사와 깊은 대화 나눈
백련사~다산초당 '사색의 길' 순례
개혁정신 숭모, 김동연 지사 동참
"경세유표, 새로 쓰는 맘으로 공직"
실제 정치로 실천하는 세상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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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지난 6월9일부터 11일까지,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이 마련한 '강진순례' 행사에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늘 찾았고 걸었던 길이지만, 강진의 다산선생 유적지를 찾는 일은 나를 언제나 들뜨게 했다. 신산한 유배살이에서도 전혀 좌절하지 않고 수많은 저술에 온 힘을 기울였던 다산이다. 다산의 흔적들을 살펴보는 일은 나를 가장 신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맨 처음 귀양살던 오두막집 '사의재'를 찾아보고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방문하는 일은 생전의 다산선생을 찾아뵙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 오두막집 노파가 운영하던 주막집 골방에서 '상례(喪禮)'를 연구하며 유배의 시름을 이겨내던 선생의 모습이 떠오르고, 가난하고 천한 일반 백성들이 탐관오리들의 탐학에 못 견디며 신음하던 정상에 차마 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한탄하던 선생의 모습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적 죄인으로 백성이나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분이어서 책으로라도 남겨 뒷세상 사람들이라도 백성과 나라를 구하는 일에 힘 써달라고 불철주야 저술에 몸을 바친 선생의 그 간절한 애국심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날에는 다산의 지혜와 개혁정신으로 경기 도정을 이끌겠다는 김동연 지사가 우리 대열에 동참해주었다. 만덕산 기슭의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넘어가는 오솔길, 이른바 '다산 사색의 길'을, 김 지사는 행사에 참여한 모든 분과 함께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사색의 길이야말로 참으로 많은 사연을 지닌 곳이다. 다산초당에 계시던 10년의 세월, 다산은 시간만 나면 백련사로 넘어가는 사색의 길을 걸었다. 떠오르는 시상을 정리해보고, 나라와 백성을 살려내는 저술의 내용을 구상하는 것도 그런 시간에 이룩하였다. 백련사에는 다산이 그렇게 좋아하고 친하게 지냈던 학승이자 선승인 혜장선사가 있던 곳이다. 혜장은 비록 나이야 다산의 10년 후배였지만, 유교 경전에도 조예가 깊었고 불교에도 뛰어난 수준의 스님이었다. 두 분은 만나면 술과 차를 마시고 시를 읊었지만 주역과 논어 등 고경에 대한 깊고 넓은 토론을 멈춘 적이 없었다. 두 분은 시간만 나면 사색의 길을 함께 걸으면서 온갖 다정한 대화를 나눈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번에 김 지사와 사색의 길을 걸으며 김 지사의 실학에 관한 애정, 다산에 대한 숭모의 마음, 백성과 나라를 구제하려는 깊은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위기상황에서 다산의 지혜와 개혁정신을 살려서 대한민국을 변화시켜야 한다'라는 생각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김 지사는 '경세유표'라는 다산의 저서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했다. "경세유표는 조선시대 행정기구 개편을 비롯한 관제·토지제도·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정책서라고 여겨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늘 경세유표를 새로 쓴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일에 임한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기도 했다.

나는 다산을 연구하고 그의 사상과 철학을 모두에게 알려, 사람다운 사람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다산의 뜻이 실현되는 세상을 그렇게도 간절하게 바라면서 살아간다. '목민심서'를 통해서는 공정하고 청렴함, 즉 공렴(公廉)한 정치를 해야 하고, '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 즉 오래된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개혁해야 한다는 '경세유표'의 정신이 정치에 반영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치의 판을 바꿔야 하고 경제 운영의 틀을 고치고, 교육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라는 김 지사의 이야기에 그냥 듣고만 있겠는가. 그런 개혁정신이 실현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사색의 길 걷기를 마치고 우리는 다산초당에 앉아 이 막된 세상을 한탄하면서 다산의 정신을 더욱 그리워했다. 제발 공정한 세상이, 청렴한 공직자가, 개혁하고 변화하는 나라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는 세상이 와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초당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며 "다산 파이팅!"을 거듭 외치면서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토로했었다. 이제는 말만,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 정치로 실천하는 세상이 오기만을 빌고 또 빈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