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화재로 23명이 숨진 화성 리튬전지 공장을 비롯한 전국 배터리 제조공장은 소방청 매뉴얼상 일관된 화재사고 대응 절차에 대한 규정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기자동차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배터리를 부품으로 쓰는 분야의 화재 대응절차는 각각 마련돼 있는데, 정작 대량의 제품을 집약적으로 다루는 제조공장에 대한 매뉴얼은 부재해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배터리 제조공장은 매년 수요가 늘어 전국 600여개 사업체에 종사자만 3만5천여명에 달하며, 이 중 33%가 경기도에 위치해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많다.
25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소방청은 긴급구조현장지휘규칙에 따라 효율적인 재난 대응을 위한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SOP)’를 수립해 운영한다. SOP는 각 재난상황마다 요구되는 일반적인 대응 방침을 기술한 지침서다. 재난현장 지휘관 및 대원들은 SOP에 안내된 사고 특성과 위험 요인, 현장대응절차 내용을 기초로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작전을 자체 판단해 진행하게 된다.
지난해 개정된 현행 SOP에는 각각 40개 화재유형과 25개 사고유형에 대한 표준작전절차가 규정되어 있는데, 이중 배터리 제조공장 화재사고 유형에 대한 별도 대응절차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작 전기차나 ESS 화재에 대해서는 배터리의 위험성 및 세세한 대응절차가 기술되어 있는데, 대규모로 배터리를 제조·생산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방침은 부재한 것이다.
실제 소방당국은 전날 이번 화재 대응절차가 적절했느냐는 우려가 제기되자 SOP상 ‘화재대응 공통 표준작전절차’와 ‘금속화재 대응절차’를 기초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통상적인 화재 대응절차에 리튬 등 금속 화재 위험성을 고려해 진압에 나섰다는 뜻인데, 이 같은 위험물질이 대량으로 모여 있는 공장에 대한 현장대응절차를 참조할 근거는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SOP는 원자력발전소, 석유 등 위험물 저장시설, 가스저장시설 등 구조적으로 위험성이 큰 시설은 유형을 따로 구분해 세세한 대응 방침을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배터리 제조공장 화재 사고도 하나의 유형으로 대응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일·이차전지를 막론하고 외부 열에 취약한 배터리 특성 탓에 작은 불이라도 연쇄 폭발로 대규모 피해를 낳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리튬 이차전지 발화가 큰 불로 확대된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소방은 SOP에 ‘데이터센터 화재 대응절차’를 신설하기도 했다.
더구나 배터리는 산업 수요가 나날이 커지면서 관련 사업체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 결과를 보면 ‘일차전지 및 축전지 제조업’ 사업체 수는 2020년 483개, 2021년 521개, 2022년 609개로 매년 늘었다. 종사자 수는 3만5천100명(2022년)에 달한다. 같은 기간 경기도는 내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업체(2020년 155개, 2021년 169개, 2022년 204개)가 위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소방청 관계자는 “SOP가 대응에 기초가 되는 방침은 맞지만, 현장지휘관과 대원들의 각 상황에 따른 판단이 우선이다. 이번 화재는 금속화재 및 ESS 화재 대응절차에 적시된 배터리 사고 위험성 등을 고려해 대응절차가 진행됐다”며 “너무 세세한 상황에 대한 대응절차를 규정해 놓으면 오히려 현장의 혼선을 빚는 역효과 우려도 있는 만큼 여러 장단점을 고려해 의견을 모으고, 매년 진행되는 SOP 개정절차에서 새로운 안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