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김달진·안동림 변역본 최고 평가
카프카·보르헤스 등 세계적으로 영향
전전긍긍 인생의 순간, 마음에 자유를
'장자'의 저자 장주(莊周)는 사마천의 '사기'에 간략하게 소개돼 있다. 그는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 몽(蒙) 출신 철학자로 도가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도교에서는 그를 남화진인(南華眞人),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고 한다. '삼국지통속연의'에서 황건적의 지도자 장각에게 도를 전수하는 남화노선이 바로 장자다.
우리 문헌에서 장자가 언급된 가장 빠른 기록으로는 고려 가요, 이른바 경기체가인 '한림별곡'이다. '한림별곡' 제2장 '당한서 장노자 한유문집/ 이두집 난대집 백락천집/모시상서 주역춘추 주대예기'라는 구절이 그러하다. 풀이하면 '당서와 한서, 장자와 노자, 한유와 유종원의 문집, 이백과 두보의 시집, 난대영사(令使)들의 시문집, 백락천의 문집, 시경과 서경, 주역과 춘추, 대대례와 소대례'란 뜻으로 당대 선비들이 가장 사랑하는 책들이 열거돼 있다. 여기에 '장자'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 이처럼 인기가 높았던 필독서 '장자'는 주자학이 지배하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돌연 자취를 감춘다. 주자학 이외에 학문을 '사문난적'으로 모는 무지막지한 이념의 독재 때문이다. 조선 중후기의 문신 남당 한원진(1682~1751)의 '장자변해'와 박세당(1629~1703)의 '남화경주해산보' 정도가 고작이다. '장자'를 사갈시(蛇蝎視)하던 주자주의의 관성 때문일까? '장자'는 다른 동양 고전에 비해 널리 읽지 않는 책이 되어 버렸다.
'장자'는 본래 52편이었으나 중국 서진의 사상가 곽상(252~312)이 이를 33편으로 편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장자'는 지금도 저작에 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바, 내편 7편만이 장자 본인의 저술이고 그 외 26편은 타인의 저술이 '장자'에 끼워 들어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장자' 번역본이 나왔으나 시인이자 한학자인 김달진(1907~1989)의 번역본과 청주대 영문과 교수를 역임한 안동림(1932~2014)의 번역본이 최고의 판본으로 평가받는다. 김달진은 시인이자 고려대 교수를 역임한 최동호 교수의 장인이기도 하다. 안동림의 번역본은 오랫동안 '장자'를 연구해온 일본의 판본을 저본으로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것이라 완성도가 높다.
일본에서 최고의 '장자' 전문가로 꼽히는 이는 후쿠나가 미츠지(1932~2001) 동경대 교수인데, 그가 바로 도올 김용옥 선생의 일본 유학 시절의 지도교수다. 한중일 모두 '장자 연구'가 크게 활성화하여 있고 엄청난 연구성과물들이 쌓여 있다.
'장자'는 동아시아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장자'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유대교 경전인 '토라'와 '탈무드'를 바탕으로 '장자'의 글쓰기와 상상력을 적극 수용한 작가로 프란츠 카프카(1883~1924)를 꼽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보르헤스(1899~1986)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진 그의 단편소설 '원형의 폐허'들은 '장자'의 '호접지몽'의 고사를 떠오르게 만든다. 일본 막부시대의 시인이자 하이쿠의 대가 마쓰오 바쇼(1644~1694)도 '장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장자'는 불교에도 영향을 주었다. 선불교를 장칠불삼(莊七佛三)이라고도 한다.
다정(多情)만 병이 아니라 열정도 지나치면 병이다. 쳇바퀴 돌리며 전전긍긍하는 인생의 순간, '장자'는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우리 마음에 자유를 선물로 준다. 현실에 지친 그대여, 문득 정신의 피로회복제 '장자'를 읽어보시라!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