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 '높은 임대료'순 대답
경영계 주장한 '높은 인건비' 아냐
일정 수준 임금 있어야 소비 여력
최임, 함께 살기위한 교집합 돼야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 수준에 많은 노동자, 시민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실질임금 삭감 시대에 살고 있는 노동자, 시민에게 최저임금 수준 즉, 얼마가 올라 얼마를 받느냐가 관심의 중심이겠지만, 여기에 더해 인상 수준을 정하기 위한 결정 기준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확산하는 특수고용·플랫폼 영역 노동자의 적정 임금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최저임금 범위에 각종 수당이 포함되면서, 임금은 인상 됐으나 실질임금은 그대로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 개선' 논의 역시 뒤로 밀린 상황은 유감이다.
임금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지급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생각에 따라 입장과 태도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의 문제를 넘어 본질을 호도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면 이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것이 소위 '을'과 '을'의 갈등이고, 경영계는 이를 노골적으로 조장한다.
지난 6월12일 수원시 대표 상업지역인 수원역 로데오문화광장 입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최저임금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가운데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경영계의 주장대로라면 '높은 인건비'라는 답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어야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제일 높은 응답은 '프랜차이즈 갑질 등 불공정 거래'였고, 다음은 '높은 임대료'였다. '불합리한 카드 수수료와 고금리로 인한 금융비용'이란 답도 많았다. 물론 설문 참여자 가운데 자영업자의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시민들은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마주한 어려움이 어디에 있는지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는 사용자들이 현행 '최저임금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지불 주체의 지불 능력을 들고나오며, 자영업자·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최저임금'으로 치환한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가지는 문제에 대해 공감하며 이의 본질적인 부분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문 등의 채택을 주문한다. 하지만 사용자 측은 이는 최임위의 권한 밖의 문제라며 항상 이를 가로막는다.
최근 한국의 대표적인 요식 프랜차이즈 기업인 '더 본 코리아'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 주목받고 있다.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리면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프랜차이즈법' 제정에 대한 적극적이고 결사적인 거부와 반대 입장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를 '슈퍼 갑'의 위치에서 본인들은 단 한 푼의 양보도 없이 '을'의 위치에 있는 가맹점주를 묶어두려는 욕심이 그대로 드러난 것 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소상공인·중소기업주는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도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게 된다. 조물주보다 위에 있다는 '건물주'를 상대로 임대료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는 또 어떠한가. 코로나19를 거치며 생계와 생존을 위해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은 높은 금리로 인해 그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항변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인건비가 제일 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생활하는데 충분하지는 않아도 일정한 수준의 임금이 노동자, 시민에게 보장돼야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이래야 시장 상인도, 음식점 사장님도 숨통이 트인다.
결국 한국 사회가 처한 불평등, 양극화 구조에서 피해와 위기를 겪고 있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더 이상 최저임금이 우리 사회의 약자로 대변되는 노동자, 시민, 중소기업, 소상공인 간의 갈등이 아니라 같은 처지에서 함께 살기 위한 교집합이 돼야 한다. 최저임금 노동자와 사용자들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지만, 이들이 처해 있는 위치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뭉쳐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있다.
/한상진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정책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