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스리랑카 노동자로 보이는 젊은 연인이 스타벅스 커피를 놓고 밀어를 나누고 있다. 지나가던 불량 소년들이 대놓고 조롱하며 욕한다. 가난한 나라 출신 외국인 노동자 커플의 스타벅스 데이트를 멸시한 것인데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진다. 이때 다리를 저는 노인 덕수가 학생들을 막아서며 호통을 친다. "와 남의 나라에 일하러 오마 커피도 몬 사묵나."
덕수가 분기탱천해 학생들과 몸싸움까지 불사한 이유는 동병상련이다. 덕수도 가난한 집의 가장으로 독일 탄광과 베트남 전장에서 달러를 벌었던 외국인 노동자였다. 60·70년대 한국의 수많은 '덕수'와 '영자'(덕수 아내)들이 외국의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품을 팔아 가난한 부모형제에게 달러를 송금했다. 소년들이 조롱한 외국인 노동자 커플은 청년 덕수였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변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한국의 1, 2차 산업은 붕괴한다. 제조,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작업반장들도 많아졌단다. 하지만 귀한 인력을 법으로도 귀하게 보호하는지는 의문이다.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가 비전문취업 비자(E-9)로 입국한다. 최대 4년10개월 체류가 가능한데, 5년 이상 체류 조건인 영주권 신청을 제한하기 위해서다. 체류기한을 넘긴 외국인 노동자는 곧장 불법 노동시장에 갇힌다. 노동과 임금 착취에 속수무책이다.
비자 만큼이나 불법적인 노동 관행도 외국인 노동자를 사지에 몰아넣는다. 지난 24일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성공장 화재로 사망한 23명 중 18명이 외국인 노동자다. 불법 파견 노동 의혹이 불거졌다. 아리셀 공장은 파견 근로 대상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적으로 썼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영화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소년들에게 항변한다. "부산에 살면 부산 사람이다. 한국에서 살면 한국 사람이다." 문화적인 견해는 갈리겠지만 법으로는 맞는 말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합법적인 체류 기간에는 한국인과 동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비자로 밀어내고 불법 노동현장을 방치하는 법으로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과 생명을 지켜줄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의 합법적인 근로 기간과 공간을 확장하고 보장하는 법 제·개정이 절실하다. 그래야 한국 산업이 돌아간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