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대 체득한 경험인듯 '익숙'
주요 위원회 위원 임명 재검토해야
국민 직접 선출 방식도 검토할 때
엽관제 폐해·탄핵·파행 막는 길
프로이드의 이론이 맞는다면 초자아가 관심의 영역이다. 윤 대통령과 김 위원장 그리고 김 상임위원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들은 유신헌법을 공부하고, 그 시대를 경험했다. 김 상임위원은 1977년, 김 위원장은 1982년, 윤 대통령은 1991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윤 대통령이 신입생이었던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가 끝났다. 1980년 서울의 봄은 짧았고, 계엄령과 함께 전두환 체제가 들어섰다.
유신헌법은 현재의 헌법과 권력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였다. 대통령은 국회 해산권과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 추천권 등 절대권력을 행사하였다. 대법원장과 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파면할 수 있도록 했다. 불법 체포와 구속 등으로 신체의 자유가 유린되었다. 언론·출판·집회에 대한 허가제와 검열제로 표현의 자유가 사라졌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과 해산권 그리고 임명권 등을 통해 전제주의적 통치를 구조화하였다.
물론 유신헌법이 대통령이나 일부 고위정무직 공무원들의 헌법관이나 사고방식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법학은 개념과 원칙을 강조하는 학문이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헌법의 내용을 대부분 암기해야 한다. 그러나 합격 후 검사에게는 헌법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현행 헌법재판소 역시 일반 검사의 직무와는 거리가 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 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은 유신헌법과 전두환 체제 등에서 검사로 일했다. 현재의 검사와 달리 그 시대의 통치방식과 업무처리 방식이 체득되어 익숙할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한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그런데도 10개월 동안 2인 체제에서 의결이 이루어지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국회의장이나 야당이 추천한 사람을 대통령이 위촉하지 않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합의제행정기관의 구성과 운영 방식이다. 법이 상정한 추천이나 임명권은 이성적인 기준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임명한 일부 위원들의 놀라운 언동들이 언론과 국회에서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국격이나 헌법의 정신에 적합한가. 그런데 이들의 행태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다름 아닌 유신 시대의 데자뷔이기 때문이다. 혹시 윤 대통령도 유신 시대에 체득한 경험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윤 대통령의 행정기관 구성과 운영을 보면 그러한 우려가 커진다. 2023년 9월 기준으로 행정기관 위원회 현황을 보면 행정위원회가 42개, 자문위원회가 571개이다. 문제는 헌법기관이나 합의제행정기관에 임명된 일부 고위정무직 공무원들의 행태가 마치 행정조직을 붕괴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는 비판들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헌법기관은 개헌이 필요하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주요 행정기관과 위원회의 위원선출과 임명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의 고위정무직에 대한 추천과 선출 그리고 임명 방식은 유신헌법에 뿌리들 두고 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국회와 대법원에 분배하는 식의 인사 추천과 임명권을 개정해야 미래가 보인다. 국민의 상식과 양심에 적합한 선출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주요한 고위정무직을 투표 방식으로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도 검토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엽관제의 폐해를 방지하고, 반복되는 탄핵과 기관의 파행을 막는 길이다. 헌법과 민주주의에 적합한 행정기관의 구성과 운영에 대해 근본적 대안을 모색할 때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