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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를 당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잃고 실의에 빠진 세입자들이 장마철 수해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한 빌라는 정화조가 장기간 청소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어 세입자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 빌라는 미추홀구 등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속칭 '건축왕' 남헌기(62)씨가 소유한 건물이다. 빌라에 사는 세입자 다수는 남씨 일당이 저지른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이들은 빌라 정화조가 넘치거나 오수관이 막힐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까딱하다간 정화조 오물이 집 하수구로 역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6개월마다 정화조 청소가 이뤄졌던 이 빌라는 지난해 2월 3일 15t의 분뇨를 퍼낸 것을 마지막으로 무려 1년5개여월 간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남씨 일당의 전세사기 사건으로 빚어진 일이다. 해당 빌라를 포함해 남씨 등이 소유한 공동주택 일부를 관리한다는 업체는 세입자들의 정화조 청소 요구에 묵묵부답이라고 한다. 과거 남씨 측의 미지급금으로 정화조 청소업체가 손을 놓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게 빌라 관리 업체 측 입장이다.

정화조 내부에 쌓인 분뇨가 1년 이상 지나 딱딱하게 굳으면 오수관로가 막힐 수 있다. 기온이 오르고 강수량이 많아지는 장마철이 되면 악취가 심해지고, 자칫 오물 등이 집 내부 하수구를 통해 역류할 수도 있다. 미추홀구 내 남씨 등이 소유한 공동주택 20여곳이 이 빌라와 비슷한 사정이라고 한다.

빌라 세입자들은 구청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상 건물 관리는 개별 건축주나 세입자들에게 책임이 있어 지원할 수 없다는 게 구청의 해명이다. 최근 제정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조례안'에도 건물 관리를 지원할 수 있는 관련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비단 정화조 청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사기가 발생한 공동주택들은 관리가 되지 않아 비가 오면 집 천장에 물이 새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는 등 고초를 겪는 세대가 적지 않다.

이번 국회에서 다시 추진될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입법 과정에 이 같은 공동주택 관리 문제가 함께 다뤄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자체의 해결 의지다. 주민들의 정주 여건과 삶의 질 개선이 지자체의 존재 이유라면 '적극 행정'을 시도하고 실행해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