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가요 중에도 불멸의 명곡들이 즐비하다. 시대의 기호이자 상징이었던 곡들이다. 부르는 것만으로 당대(當代)의 기억과 감성이 소환되고, 당대의 사람들은 공감각의 감상과 희열에 빠진다. 국지적이고 민족적인 정서다. 문화적 이방인이 이 정서를 자극하면 지극한 환대를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격변기를 서사한 올드팝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미국 조야와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K팝 걸그룹 뉴진스가 도쿄돔 공연으로 일본을 들었다 놨다. 정확하게는 '푸른 산호초' 현상이 맞겠다. 푸른 산호초는 일본 여가수 마쓰다 세이코가 1980년에 발표한 노래다. 세이코는 이 노래로 단번에 국민 아이돌로 시대의 기호가 됐다. 1984년 'J에게'로 혜성같이 등장해 가요계를 주름잡은 이선희를 떠올리면 된다.
뉴진스 멤버 하니가 솔로무대에서 푸른 산호초를 불렀다. 스무살 하니가 단발머리와 마린룩으로 40여년 전 세이코로 변신해 무대를 활보했다. 일본 관객들은 마치 20대 세이코를 만난 듯 열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집단적인 시간여행에 혼이 나간 것이다. 지난달 새 앨범 홍보차 방한한 빌리 아일리시가 무대에서 이선희의 'J에게'를 열창했다고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일본이 감동한 포인트는 '존중'이다. 하니의 푸른 산호초는 세계 문화의 신주류인 K팝이 40여년 전 J팝을 향한 존중의 표시였다. 지금은 K팝이 대세이지만 한때 아시아 대중문화의 대표주자는 J팝이었다. 문화는 국경과 세대를 초월해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하니의 푸른산호초 무대는 J문화를 정중하게 존중할 정도로 성숙한 K문화의 포용력을 보여준다.
하니의 푸른 산호초에 열광하는 일본 팬들과 언론의 헌사가 넘치는데 그 중 jtbc가 보도한 반응이 유독 의미심장하다. "호주 국적 베트남 소녀가 한국의 가수가 돼 일본 노래를 부르고 그걸 세계인이 함께 즐긴다. K팝이 만들어가는 미래다." 최근 K팝 그룹은 다양한 국적의 멤버들로 구성된다. 세계화된 K팝문화가 K팝 스타를 꿈꾸는 각국의 영재들을 흡수하고, 이들이 K팝의 세계화를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는 과정이다.
인종과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K팝 스타들이 세계를 향해 질주한다. 반면에 K정치는 반일과 극일 사이에서 어제도 오늘도 파행과 공전을 거듭한다. K정치만 우물안에 갇혔다. K팝 스타들이 국회의원 특강이라도 해야 하나.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