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안부 전화 최근 끊겨
A와 멀어진후 '일방통행' 깨달아
내 감정 쏟아내고 괴롭혀 '자책감'
C는 종교인 그에게 질문거리 많아
얼마전부터 고민 상의 '평형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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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옥 출판인
나는 매주 월요일 세 사람한테 전화하는 것으로 한 주를 시작한다. 셋은 모두 나보다 연장자들이다. 그들에게 일주일간 일어났던 나의 일들을 털어놓고 상대방의 안부도 묻는다. 벌써 10년 이상 되었다.

그런데 올 봄을 지나면서 세 사람한테 큰 변화가 찾아왔다. 한 사람은 50년을 해로한 남편이 암에 걸려 전이된 상태고, 다른 한 사람은 딸이 암에 걸려 가슴 철렁한 순간을 맞고 있다. 그 밖의 한 사람은 15년 동안 틀어박혀 책만 팠는데 갑자기 취직이 되어 매일 험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어쨌든 그래서 정기적으로 하던 전화는 끊어졌다. 그중 가장 친했던 A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으로 섬세하고 예민하며 직관력이 뛰어나다. 나는 가끔 그에게 "마이크로의 세계에 산다"고 이야기했다. 아주 미세한 것까지 감지하기 때문에 사람의 심리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잘 알아챘다. 그래서 대화가 잘 되었고 나는 그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찍어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타입이고 그는 느낌이 이상하면 아예 발을 담그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매번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를 보면서 그는 무척 답답해 했고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그 지겨운 실패담을 강산이 바뀌는 시간만큼 들어주었다. 게다가 내가 나한테 매몰되지 않도록 일침을 가했다. 그것 때문에 더 그에게 의지했다.

대화의 9할 이상이 내 수다였고 그는 듣고 맞장구쳐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 들추었고 그는 해야 할 말도 아꼈다.

그와 거리가 생긴 지금에서야 우리의 관계는 일방통행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너무 내 감정을 쏟아내 그를 괴롭혔다는 자책과 함께 한편 서운하기도 하다. 나를 진정한 대화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과연 그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던가?

그런가 하면 B는 한(恨)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전화를 하면 살아온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다. 그는 사업을 해서 한때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다. 강북의 부자동네에서 살았다. 결혼하고 바로 사업이 불처럼 일어나 남편은 취미로 직장을 다니며 부인 돈으로 호인 행세를 했다. 자식들도 엄마가 미리 은행에 맡겨놓은 돈을 구애 없이 쓰면서 컸다.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 "돈이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벌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결론적으로 그는 지금 돈이 없어 큰 고생을 하고 있다. 사주를 보면 죽는 날까지 일을 한다고 나온단다. "그 많던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나 스스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럴 때 나는 "조실부모하셔서 그래요. 돈을 잘 버셨을 때는 잘 나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이야기가 귀에 안 들어왔을 거예요"라고 입바른 소리를 한다.

그와 통화하면 우울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다시 연락하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는 내게 열심히 사는 것보다 생각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터득시켰다.

C는 책을 좋아하는 종교인으로 우리 출판사 독자다.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에게 질문거리가 많았다. 그도 일주일 내내 입 한번 뻥긋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 많아서 내가 전화하는 걸 반겼다. 그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놓고 말문이 터지면 몇 시간이 부족하다 할 정도로 얘기가 많았다. 그의 관심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나는 '오직 지금뿐'이라는 명제를 내세워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망상이라며 딴지를 걸기도 하지만 철학적인 질문에 매달리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사실에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가 얼마 전부터 자신의 고민을 나한테 상의해오고 있다. 한쪽으로 힘이 기울지 않고 평형을 유지하게 된 것 같아 안도감을 느낀다.

/김예옥 출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