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구문화재단 ‘오작쓰작’ 2기 노래 들어보니

눈밭을 뚫고 피어난 복수초
겨울의 긴 잠에서 깨어나
노란 얼굴을 방긋 내밀며
새로운 시작 봄을 알린다
어떻게 지난 겨울을 보냈나
고맙고 어여쁜 내게 말하고 싶다

엉크러진 삶에 지쳐 그저 달아나고 싶을 때
눈 덮힌 산에 피어있던 그 의연함처럼 살으리라
그저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 노래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비를 맞으며 - 작사 신유연, 작곡 이청록> 중에서

‘시니어 작사가’ 신유연 씨가 지은 노랫말입니다.

눈밭을 뚫고 피어난 노란 복수초 한 송이를 바라보며, 그 의연함으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복수초처럼 “그저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살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작사가의 깊은 성찰을 담은 노래입니다.

전문 작사가의 노랫말이 아닙니다. 인천에서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는 평범한 시민이 지은 노랫말입니다. 그럼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표현력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가사입니다. ‘문화도시 부평’ 유튜브 채널에서 신유연 씨가 직접 부른 노래(https://youtu.be/LJpQSSekbWU?si=FX31wo3JiFyyUF3_)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인천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만 60세 이상의 지역 주민 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시니어 작사가 프로젝트 ‘오작쓰작’ 2기의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오작쓰작’은 ‘오선지 위에 작사하고 작곡하는 나의 이야기’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부평남부노인문화센터에서 3개월 동안 자신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 작사 실습 기초, 노랫말 쓰기, 노래 배우기 등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젊은 싱어송라이터 강백수 씨와 이청록 씨가 교육과 작곡을 맡아 시니어 작사가들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강사들의 인터뷰 기사는 경인일보가 최근 보도(7월 1일자 17면=[인터뷰] 시니어 작사가 프로젝트)하기도 했고요.

부평구문화재단 ‘오작쓰작’ 2기 시니어 작사가들이 지난 13일 부평남부노인문화센터에서 결과 공유회를 마친 후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부평구문화재단 제공
부평구문화재단 ‘오작쓰작’ 2기 시니어 작사가들이 지난 13일 부평남부노인문화센터에서 결과 공유회를 마친 후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부평구문화재단 제공

시니어 작사가들의 노랫말에는 진한 감동이 있습니다. 그 진솔한 이야기가 우리네 이야기를 닮아서 일까요. 우리의 이야기,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죠. 백 번의 상찬보단 독자 여러분이 직접 듣고 느껴보는 게 좋겠네요. ‘오작쓰작’ 2기 시니어 작사가들의 주요 가사를 공개합니다.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유튜브 링크도 붙입니다.

윤명숙 씨가 작사(강백수 작곡)한 노래 ‘모닝커피’(https://youtu.be/nWETT-tABQk?si=kmmWCamprjGXwGKT) 가사 일부와 후렴입니다.

<모닝커피>

햇살 가득한 창가 연초록 잎새들도
오늘도 싱그럽다
언제부턴가 그냥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날 보며 씁쓸한 미소 입가에 머문다

진한 아침 커피향 이 아침이 행복해
혼자 있는 이 시간 항상 고마워
맘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이 시간
이렇게 아름답게 나이들거야

■ 박희녀 씨가 작사(강백수 작곡)한 노래 ‘키다리 아저씨’(https://youtu.be/gmeCuE9bJD0?si=pjuXCB2CIuHxUk4Z)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았네요. 올해가 결혼 50주년이라고 합니다.

<키다리 아저씨>

아들이 태어났을 때에 행복해하던 당신 모습
손주와 손잡고 노니는 당신의 모습이 멋져
빙그레 미소로 내 마음 훔쳐간 무심한 사람아
키다리 멋쟁이 당신은 영원한 나만의 사랑

세월은 흘러가고 흰머리 어울리는
키다리 아저씨 당신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사랑해요
영원한 나만의 사랑

■ 서정옥 씨가 작사(작곡 이청록)한 ‘잘 몰랐어 미안해’(https://youtu.be/k7AHBEP-Lwo?si=u5Tqp1GC0yoyUtQ9)는 부모의 마음을 노래합니다.

<잘 몰랐어 미안해>

TV 속 아이를 보며 문득 떠오른 너의 어린 시절
그때 난 왜 몰랐을까 그저 미안함에 가슴 저린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그럼 얼마나 좋을까 너의 맘을 더 잘 알았을텐데
너무 외로웠겠다 엄마의 마음이 바빴어
네가 힘들었을 때 그저 난 어쩔줄 몰랐단다

My son 그저 몰랐다는 말이
비겁하고 옹색한 변명이구나
My son 바보 같은 엄마에게서
잘 자라준 네가 그저 고맙고도 미안하구나

■ 최미자 씨가 작사(강백수 작곡)한 노래 ‘나의 보물아’(https://youtu.be/fbhNYABkm_g?si=vIrCDFcocKNJ1nZs)는 어두운 시절 만난 선물 같은 존재를 이야기한 종교적 고백입니다.

<나의 보물아>

어린 나는 혼자였고 외로웠다네
불안했고 두려웠던 어린 시절 나
주눅들고 소심했던 상처 많은 나의 삶

(중략)

내 손으로 널 만들었단다
소중한 나의 보물로
태초에 내가 너를 택했다
어여쁜 나의 신부로
어여쁜 나의 보물아
어여쁜 나의 미자야

■ 정영길 씨가 작사(작곡 이청록)한 노래 ‘그저 한 번 불러봅니다’(https://youtu.be/d58ATJhP99A?si=EV_hib2M9BxXc74f)는 어릴 적 몸이 성치 않았던 자신을 업고 키운 외할머니와 부모님에게 보내는 ‘전 상서’입니다.

<그저 한 번 불러봅니다>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그저 배가 고파 울었던 작은 갓난아이
소아마비 날 업고 온갖 정성으로
결국 두 다리로 걷게 하신 고마운 부모님

난 한 걸음 두 걸음 거닐며
온갖 풍파를 헤쳐나갔지
이젠 가슴에 멍들고 한을 갖고 사는 신세
부르고 외쳐도 돌아오지 않으시는
부모님 불러봅니다
통곡한들 오시려 오리까 그저 한 번 불러봅니다

■ 정우정 씨가 작사(작곡 이청록)한 노래 ‘오늘의 날씨’(https://youtu.be/LQAfc2O3noA?si=_hfAmY48m0ny_aLR)는 긍정하는 삶의 태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늘의 날씨>

비가 내리면 가벼운 우산을
눈이 내리면 그저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을
새로 산 옷들의 라벨은 보이지 않고
그저 가벼운 것으로만 옷장을 채워 가는데

나는 이렇게 점점 변해가는데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을까
뭐 어때, 시간이 흐르는 것뿐인데
뭐 어때,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 마지막 곡은 최혜경 씨가 작사(강백수 작곡)한 ‘별빛’(https://youtu.be/At34mKpasU8?si=fn5zEZyOZjiogB98)이네요. 인생은 힘들고 지칠 때도 많지만, 별빛 같은 밝음이 남는 선물일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합니다.

<별빛>

인생이 아파 힘겨워했던
고통스러운 순간순간
그 모든것이 지나간 후에
깨달았다네 “삶은 선물”

힘들었던 인생 지쳐있던 인생
긴 여정을 우린 잘 견뎠고
달빛 같은 추억 별빛 같은 행복
반짝반짝 우린 기억하자

이들의 노래를 모두 들어보니 어떤가요. ‘오작쓰작’을 이끈 강백수 씨는 이렇게 소회를 말했습니다.

“저는 노년기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 위인전을 봐도 어떤 인물의 노년기를 묘사할 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같은 표현으로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노년이라 함은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 시간이며,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시간이겠거니 생각했죠.

그런데 시니어 작사가 선생님들이 지은 노랫말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지나온 삶이 어땠는지보다 여전히 앞으로의 삶이 어떠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부평구문화재단은 오는 8일부터 12일까지 ‘오작쓰작’ 3기 수강생을 모집할 예정입니다. 또 다른 시니어 작사가들의 데뷔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