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가치관적 갈등·분열 초래
규범·공동체 이해관계 합의못해
시대적 변화 담아낼 새 사유체계
못 이끌어내면 위기로 몰아간다
한국 사회는 불과 100여 년에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 서구 세계가 16세기이래 거의 400여 년에 걸쳐 겪은 근대적 변화를 일시적으로 경험했다. 지금의 기성 세대가 전 근대 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지닌 채 살아간다면, 청년 세대는 근대를 넘어 근대 후기의 문화적 세계에 흠뻑 젖어있다. 세계사를 통해서도 서구의 근대적 변화는 농경사회를 급격히 해체한 극단적 변화의 시기였다. 산업혁명이 추동한 근대적 전환은 사회, 문화적 변화는 물론 일반인의 사고체계에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변혁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서구 사회가 300여 년 이상의 적응 시간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했다면, 우리 사회는 이를 집약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커다란 격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흔히들 이 근대 수용의 역사를 압축 근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에 따라 기성 세대가 근대에 대해 과잉으로 반응하거나 근대화를 숙명의 과제로 강요받았다면,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이 시간은 다만 연대기적인 후기 근대의 시대상으로 수용될 뿐이다. 그런 까닭에 청년들에게 이 시대는 후기 근대 내지 탈근대의 일상적 문화로 자리한다.
우리 사회는 이런 외형적 변화를 성찰하여 내면화하는 데 실패했다. 서구 근대 세계와 그 토대가 되는 문화를 수용하여 이를 사상적 체계로 통합하는 작업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 대신 근대의 외면적 풍요로움에 휘둘려 그 시대상과 시대정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외면했다. 맹목적인 자본주의의 풍요와 일면적 자유주의에 현혹되어 규범의 세계를 전혀 돌아보지 못한 것이다. 구 한말의 실패와 일제 강점기라는 야만의 시간을 딛고 경제와 사회, 또는 문화적 측면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까닭은 이러한 성취를 뒷받침할 내면적 세계를 정초하는 데 철저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관 부재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지체현상의 근본 원인이다. 이 지체가 세대간 문화적이며, 가치관적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그에 따라 정치적 양극화와 의사소통의 혼란은 갈수록 심각해지며 사회적 약자와 경제 불평등에 대한 배려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공통의 규범과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합의나 이해를 만들어내지 못했기에 초래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실에 전혀 무지한 한국의 주류 기성 세대는 여전히 철 지난 가치관에 매몰되어 관성적으로 한 때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패러다임을 반복하고 있다. 현재의 기후 위기는 단순히 생태계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산업사회 이래의 패러다임이 그 수명을 다했음을 경고하는 표징이다. 현대 사회의 체계를 넘어 사유체계 자체의 변혁이 논의되는 이유다. 이런 문제들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세계의 철학과 규범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에 접근하는 관점 자체가 지난 시대의 패러다임에 잠겨있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는 이런 변화를 다만 몸으로 절감하고 있다. 그들에게 과거의 패러다임을 강요하는 한 어떠한 변화도 가능하지 않다. 시대적 변화를 담지해 낼 새로운 사유체계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이 우리 사회를 진정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