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민원 피하려 임직원 희생양
기업, 의무 방기·영리에 도움 안돼
책임여부 시민들 기억에 '차곡차곡'
소비문화에 섬세하게 장기적 반영
나이키는 캐퍼닉을 광고 전면에 내세우며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신념을 가져라'라고 새겼다. 보수주의자들은 나이키 운동화를 불태우는 영상을 퍼뜨리며 불매운동에 나섰지만, 성과는 없었다. 캐퍼닉 광고 이후 나이키의 온라인 매출은 30% 이상 급증했다. 인종차별적인 극렬 보수주의자의 소비를 희생하는 대신, 사회적 가치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나이키가 '악성 민원'에 응답하며 캐퍼닉의 광고를 내리거나 해명했으면 어땠을까. 그럴 가능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거칠게 가정하자면, 최초의 모델 기용으로 이미 화가 난 일부 보수주의자의 지갑도 잃고, 사회적 가치에 따라 소비를 결정하는 이들에게도 큰 실망을 안겨 매출 하락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십 년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오염되는 것도 당연지사다.
실제로, 미국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였던 버드라이트는 지난해 트랜스젠더 딜런 멀바니(Dylan Mulvaney)와 프로모션을 진행한 뒤 보수주의자와 젠더론 반대자 등의 항의를 받자, "멀바니에게 증정한 기념품은 인플루언서 수백 명에게 준 것 중 하나"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진보 진영까지 보이콧에 합세했고, 지난해 4분기 버드라이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2% 떨어진 수준에 머물렀으며 점유율 1위에서 내려와야 했다.
위 사례들은 기업이 성, 젠더, 인종 차별과 같은 민감한 사회적 이슈와 연관될 때 얼마나 일관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섬세하게 사안을 처리해야 하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특히나, 정치적·도덕적으로 음흉한 의도를 가진 악성 소비자들의 과다대표된 목소리에 응답하여 힘을 싣는 것은 단기적으로 서로 다른 소비자 모두를 잃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기업 이미지에 지울 수 없는 '흑역사'를 남긴다는 교훈을 준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어떤 악성 소비자들은 '집게손이 남성을 비하한다'라는 억지 논란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집게손은 너무나 보편적이고 흔하디흔한 모양인 탓에 편의점, 게임, 자동차까지 업종 불문 수많은 기업이 악성 민원의 표적이 됐다.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 대부분 기업은 나이키와 달리 미흡하고 허술하게, 당장 논란만 피해 가는 쪽을 택했다. 명확한 조사나 근거도 없이 집게손과 연관된 임직원이나 자회사 등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최근 르노 코리아도 해당 직원은 분명히 악성 소비자들이 주장하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는데도 즉각 사과하며 직원을 즉시 직무에서 배제했다. 르노 코리아의 응답이 도화선이 되어 인터넷상에서는 무고한 직원에 대한 신상 캐기와 위협이 도를 넘는 상황이다.
기업은 위험과 폭력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 근거 없는 부당한 민원을 피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임직원을 내던지는 것은 기업의 고유한 의무를 방기하는 행위임은 물론, 기업의 영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게손 논란의 최초격인 GS25 또한 즉각 사과하고 해당 직원을 징계했음에도 2021년 2분기 영업이익이 27.7%나 하락했던 것을 기억하자.
단기 매출만이 문제가 아니다. 집게손 억지 논란은 잠깐의 리스크다. 한국은 현재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 평등을 이룩해 나가는 과도기적 진통을 겪고 있으나, 결국 다른 선진국처럼 성차별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며 그러한 진전이 페미니즘의 결실로 평가되는 시점이 결국은 도래할 것이다. 그때, 성차별주의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한 어리석고 신뢰할 수 없는 기업으로 기억될 것인가? 어떤 기업이 임직원과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지 아닌지는 역사와 시민들의 기억에 차곡차곡 낱낱이 기록되고 있으며, 이 기록은 악성 소비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소비문화에 섬세하게, 매우 장기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유은수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