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무성의한 3차 공모 무산
인천시민에겐 '사용 종료' 절박
정부·서울·경기도는 다른 시각
중앙언론 '잔여부지 운운' 보도

매립지는 인천콤플렉스 '급소'
서구·지역 정치권 반발 구체화
총리실 전담기구 근본대안 아냐
'합리적 실리' 있어야 파기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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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일에는 순서가 있고 결심에는 때가 있다. 도시행정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환경부가 주관하는 수도권 대체매립지 3차 공모도 예상대로 무산됐다. 이미 실패했던 1, 2차 공모에 비해 응모 여건을 많이 완화했다고 하지만 이를 주관한 환경부의 성의는 보이지 않았다. 되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다는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인천시민들에게 쓰레기매립지는 사용 종료가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2015년 서명한 '수도권매립지정책 4자 협의체 최종 합의서' 파기를 결심할 때가 됐다. 합의서 파기 사유는 분명하다. 4자 합의 기본목표인 쓰레기매립지의 사용 종료 시기가 내년으로 다가왔고 합의서의 대전제인 서울과 경기도의 대체매립지 조성이 제자리걸음하면서 앞으로의 해결 전망도 어둡기 때문이다. 그 밖의 다른 합의 내용들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행된 것이 없다. 핵심 사항이 합의된 기간 내에 이행되지 않은 합의서는 법적으로도 무효다.

4자 합의 파기 결심을 재촉하는 구실들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는 아예 우리는 쓰레기 묻을 땅이 없다고 말한다. 인천과 김포 경계에 겹쳐 있는 제4매립장을 두고는 김포의 서울 편입시 서울시 매립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들도 나온다. 지금 그 누구의 땅도 아닌 공유수면을 두고 함부로 하는 주장들이다. 경기도는 자체 분도 문제로 매립지 문제는 현안에서 밀려나 있고 주무 부처인 환경부도 연초 대통령 주요 업무보고에서 매립지 문제는 보고조차 안했다. 이는 현 매립지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경기도에 형성돼 있는 공감대를 구태여 대통령에게까지 보고 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 것으로 읽힌다.

중앙 언론들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대체매립지 3차 공모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보도를 하면서도 4자 합의서에 대체매립지 조성이 불가능할 경우 잔여 부지의 15%를 더 쓸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기 때문에 당장 쓰레기 대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합의서상 잔여 부지 15%는 이번 3차 공모의 부지 면적 조건보다도 넓은 땅이라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지난 30여년간 인천사람들은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이 쓰다 버리는 쓰레기를 모아 처리하는 특별시민이 되었다. 쓰레기매립지 사용 종료 문제는 악취·오염·분진 피해뿐만 아니라 하루 200대가 넘는 쓰레기 운반 차량의 날림먼지 속에서 경제적·환경적으로 고통받는 서구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쓰레기 매립지는 인천디스카운트의 주범이고 인천콤플렉스의 급소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물론 지역 분쟁 등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피해로 인천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여러 요인들 중 단연 으뜸이 쓰레기장 문제다. 서울 쓰레기를 버리는 변두리라는 주변 도시 콤플렉스는 인천 시민들뿐만 아니라 수도권 청년층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다. 수도권을 가정집이라고 볼 때 안방은 서울이고 거실은 경기도이며 인천은 다용도실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다용도실은 가스통, 쓰레기통 등 안방과 거실의 필요 기능을 제공하는 것들이 모인 곳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체매립지 공모가 계속 무산되면서 서구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고 정치권의 반발도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인천시 이관 촉구나 국무총리실 내 갈등 조정을 위한 전담기구 설치 요구 등은 근본적 대안이 아니다. 오히려 현 매립지 사용 연장의 빌미를 만들어줄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수도권매립지공사의 인천 이관은 현 매립지의 사후관리를 위한 것이지 사용 종료와 직결되는 현안이 아니다. 오히려 30년 이상 소요될 사후관리 비용의 적립금도 줄어들고 있어 당장의 공사 이관이 알맹이인지 껍데기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그나마도 수도권매립지공사 인천 이관 문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공사 노조나 주민협의체 동의를 선결조건으로 정한 4자 합의서다.

대통령 약속이라며 국무총리실 내에 전담기구를 만들어달라고 촉구하는 것도 대안이 아니다. 이 요구는 현재 환경부가 단독 주관하는 대체매립지 공모를 부처 간 국무조정 기능을 가진 국무총리실이 나서 대체매립지를 조성해달라는 기대감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 또한 순진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우선 현재로서는 국무총리실이 아니라 대통령실이 나서도 쓰레기 매립장에 대한 국민 거부 정서를 넘어서기 어렵다. 신규 쓰레기매립장이 어렵다면 인천에 보상책을 마련하고 일정 기간 연장 사용하자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 근거 역시 4자 합의 단서조항이다. 이미 조성되어 있는 매립지가 있고 반입량도 감소하고 소각장도 늘린다는 데 연장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묻는 수도권 여론조사를 해 보자고 하면 어떻게 될까?

어려울 때는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2015년 4자 합의는 당초 2016년 사용 종료 예정이던 매립지에 대해 전임 시장들이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손 놓고 있던 것을 종료 시기가 다가오자 민선 6기 유정복 시장이 부랴부랴 나서 힘들게 4자를 공식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인 것이다. 당시 함께 서명한 윤성규, 박원순, 남경필 세 사람은 지금 없다. 게다가 민선 7기에는 4자 합의 이행이 중단되고 자체매립지를 조성한다는 쓰레기 독립선언도 있었다. 민선 8기에 다시 4자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민선 7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됐다. 이제 더 이상 오락가락할 시간이 없다. 마지막 남은 당사자인 유정복 시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파기 결심을 해야 한다.

사실 4차 공모도 쉽지 않다. 응모 여건과 인센티브 등의 재검토만 가지고는 범국민적 쓰레기장 기피현상을 돌파할 수 없다. 공모 기준 설계를 다시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4차 공모 실패의 다음 단계는 무엇이어야 하나? 만약 한 번 더 공모를 하더라도 파기 결심을 하고 해야 한다.

대체매립지 외엔 대안이 없다는 생각도 재고해야 한다. 수도권매립지는 대한민국 국민 절반의 문제이지 인천시장이 혼자 총대를 메고 고군분투할 일이 아니다. 쓰레기장 문제를 2천600만 수도권 시도권쓰레기매립지 4자 합의를 파기할 결심민들의 공통 의제로 올리려면 거기에 합당한 명분과 합리적 실리가 있어야 한다. 바로 거기에 인천시가 4자 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다는 신호가 담겨야 한다.

길은 끊기면 다시 놓고 막히면 돌아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인천시 자체매립지 조성 방안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4자 합의 파기 여부와는 별개로 진전 없는 동부권과 서부권 소각장 설치는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과 거리를 두고 소통하지 말고 인천시에 범시민대책기구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시민들이 인천은 서울의 쓰레기나 치우는 변방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제물포 르네상스나 글로벌 톱텐 시티의 동력도 커진다.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