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나라 좌극명이 편집한 '고악부'에는
군자는 일이 터지기 전 대비하는 사람 정의
사고 발생 전 조짐 '기미' 읽는 능력 있어야
고위층 인사들 의심·의혹 살 행동하면 안돼

박재희-춘추칼럼.jpg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시간당 1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장마철 각종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기상청은 200년 만에 한 번 정도 발생할 수 있는 강수량이라고 발표했다. 승강기 침수와 산사태로 인명사고가 발생하고, 도로가 침수되고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등 장마철 피해를 미연(未然)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

일방통행로를 잘못 인식하고 진입,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교통사고로 안타까운 사망사건이 발생하였다.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하여 진실 공방을 하고 있는 축구아카데미 대표, 명품 백 알선 수수에 대한 공방으로 촉발된 정치권 싸움, 음주운전 사고 후 뺑소니로 구속되어 재판받는 연예인, 눈뜨면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를 보며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을까를 질문해 본다. 미연에 방지할 수만 있었다면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안타까움 때문이다.

미연(未然)은 아직까지 일이 터져서 그렇게(然) 되지 않았다(未)는 뜻이다. 미연에 방지하라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 미리 조치를 취하여 일의 발생을 막는다는 것이다. 하수는 사고가 터져도 해결하지 못하고, 중수는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해결하고, 고수는 사고가 나기 전에 해결하여 사고 자체를 막는다. 미연에 방지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고수다.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편작(扁鵲)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의술을 갖고 있었던 명의였다. 편작에게는 형제가 셋이 있었는데 모두 의술에 능통했다고 한다. 형제 중에 누가 제일 의술이 뛰어나냐는 질문에 편작은 큰형이라고 대답하였다. 큰형은 병이 나기 전에 미리 알아차려서 미연에 예방하니 의술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형은 병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치료를 해주고, 자신은 환자의 병세가 깊어 고통을 호소할 때 비로소 치료하기 때문에 가장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자신이 명의라고 세상 사람들에 알려져 있는 것은 병이 나서 고치는 것만 보고 그러는 것이니 진짜 고수는 병이 나기 전에 미연에 치료하는 큰형이라는 것이다. 편작은 이미 발생한 병만 고치는 하수라면 편작의 큰형은 예방의학을 실천한 미연의 고수였던 것이다.

중국 원(元)나라 좌극명(左克明)이 편집한 '고악부(古樂府)'에는 군자의 능력을 '미연(未然)에 방지(防止)'라고 정의한다.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조심하고 조치하여 예방한다는 것이다. '군자는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대비하는 사람이다(君子防未然, 군자방미연). 군자는 남들의 의혹을 살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不處嫌疑間, 불처혐의간)'. 오이 밭에서는 신발 끈 매지 말고, 자두나무 밑에서는 모자를 만지지 말아야 도둑질 한다는 혐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고위층 인사들은 남의 의심이나 의혹을 살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 사건이 터지고 혐의를 받기 전에 미연에 조심해야 한다. 명품 백을 그냥 준다고 덥석 받고, 법인카드를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난다면 미연의 방지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기미를 읽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미(幾微)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나타나는 미세한(微, 미) 조짐(幾, 기)이다.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반드시 조짐이 있다. 사고가 자주 나는 도로에는 사고의 기미가 있고, 침수가 자주 되는 도로에는 침수의 기미가 있다. 기미를 알고 미연에 방지하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 하인리히 법칙에 의하면 어떤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작은 사건과 조짐이 선행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큰 사고는 예정된 사고이며,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작은 사고와 기미가 선행한다는 것이다. 고수는 기미를 미리 읽고 일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 몇 가지 나쁜 징후의 수치가 나타났다. 큰 병 나서 고생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는 다짐을 해 본다. 병나고 나서 병원을 찾는 것은 하수이기 때문이다.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