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는 사람 '해마다 2천명'
최저임금 170원 오른 '1만30원'
'적절하다'는 우리사회의 악습
나아질 기미마저 보이지 않아
지난 5월28일 쿠팡CLS 대리점의 배송기사로 14개월을 근무했던 고 정슬기씨는 새벽배송을 마친 뒤 자택에서 쓰러지고는 숨을 거두었다. 4남매의 아빠였던 고인은 사망 전 심야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10시간 30분씩, 주당 63시간이라는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41살의 한창인 나이에도 버티기 쉽지 않은 과로였다.
쿠팡플렉스 남양주2캠프의 이름모를 직원과 고인이 나눈 카톡에는 쿠팡 측의 '예의 바른' 독촉과 고인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탁드립니다. 달려주십쇼'라는 쿠팡 측의 요구에 고 정슬기씨는 '개처럼 뛰고있긴 해요….'라며 넋두리하듯 대답한다.
저출산 때문에 망할 거라는 나라에서 어린 자녀가 넷이나 된다면, 하루 4시간만 일해도 생계와 육아에 지장이 없도록 전 사회의 지원이 필요할 듯싶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하루 10시간도 넘게 야간 일을 하며 '개처럼 뛰어야' 올바른 부모이고 그래도 건강에 이상이 없어야 모범적인 시민이다.
한국사회의 모범시민은 새벽에 배송 일을 하는데 폭우가 쏟아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을 맡긴 기업 쪽의 정답은 죽음의 위험까지도 무릅쓰는 것이다. 지난 9일 새벽 집중호우가 내린 경북 경산에서 쿠팡의 물품을 배송하던 40대 여성 A씨는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지 사흘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쿠팡 측은 배송중단 등 악천후에 따른 안전사항을 기사들에게 안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고 당시 A씨는 비 때문에 배달할 수 없다고 회사에 전했음에도 다른 곳부터 배송하라는 콜센터의 연락을 받았다. 이것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은 아니지만, 쿠팡의 말과는 다르게 폭우 배송의 위험을 감수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기사에게 전달된 것이다. 해마다 2천여 명이, 개같이 벌어 정승이 되긴커녕, 일하다가 죽는 나라의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6월24일 23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의 참사는 어떠한가? 사측은 특수물질을 다루는 시설임에도 전용 소화기조차 제대로 비치하지 않았고 단돈 3만원을 미납하는 바람에 정부 지원 안전컨설팅도 받지 않았다. 일용직 이주노동자로 위험한 현장을 메웠으니 그래도 애국심은 있지 않냐고 평가해주면 되는 걸까?
산재 왕국의 기저에는 한국을 지배하는 최고의 이념, 서열주의 악습이 있다. 설국열차의 뒤칸 승객들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며 뒤칸에 어울리는 삶이란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K-서열주의는 능력이나 노력이 모자랐든 아깝게 경쟁에서 탈락했든, 낙오자들은 박한 대우를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K-능력주의로 뒷받침되며, 각자 알아서 앞칸으로 가는 것이 공정한 해법이라는 K-공정과 K-개인주의의 엄호를 받는다.
K-서열주의, K-능력주의, K-개인주의(각자도생주의), K-공정의 성채 속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권리의 박탈은 뒤칸의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2019년 10대 건설사의 산재승인 중에서 정규직은 207명, 비정규직은 1천471명으로 비정규직이 87.7%에 달했다. 2018년 업무상 재해를 겪었다는 응답자 가운데 정규직은 66.1%가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었지만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34.4%에 그쳤다. 비정규직이 훨씬 더 위험하게 일하지만 사고에 대한 공적 보상은 오히려 훨씬 더 적게 받는다.
2020년 산재보험 가입자 기준 전체 사고재해율은 0.49%인 반면, 이주노동자는 0.87%로 두 배에 육박했다. 위험의 외주화 혹은 이주화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산업재해 실태는 K-서열주의의 오랜 상징물이다.
지난 12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역대 두번째로 낮은 1.7% 상승률로 170원이 오르며 1만30원으로 결정되었다. 월급으로는 206만740원에서 209만6천270원으로 3만5천980원이 올랐다. 서열이 낮은 이들에게는 이렇게 적은 임금이 적절하다는 한국사회의 신호이다. 우리 사회는 이 지독한 악습으로 병들었고 나아질 기미마저 별로 없다.
/장제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