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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최근 국내 극장가에서 예술영화 바람이 불고 있는데, 그 주역 중 하나가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연출한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다. 이 영화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야쿠쇼 코지가 맡은 주인공은 도쿄 시내 공공화장실 청소부다. 영화는 일단 공공화장실 청소부의 반복되는 소박한 일상을 보여줄 뿐인데, 위로를 받았다는 국내 관람평이 많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도쿄 시부야구 공공화장실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우리로 치면 서울시의 자치구 격인 시부야구는 2020 도쿄올림픽 전후로 안도 타다오 등 유명 건축가와 예술가 16명에게 공공화장실 리모델링을 맡기는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프로젝트를 홍보하고자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에게 공공화장실이 등장하는 영화 연출을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퍼펙트 데이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더럽고 냄새나는 공공화장실을 누구나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환경 개선'이다. 최근에는 애초 사업 목적에 더해 자연스럽게 관광 코스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정상급 건축가와 영화감독을 섭외해 공공화장실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시설로 변신시킨 시부야구 공무원들의 기획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직업병처럼 떠올린 사례는 인천 내항 8부두의 거대한 곡물창고를 리모델링한 복합시설물 '상상플랫폼'이다. 내항 1·8부두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허물 수도 있었을 '아시아 최대 규모 곡물창고'를 인천시가 우여곡절 끝에 공공시설로 살려냈다.

그런데 역사적 상징과 활용도 높은 규모까지 갖춘 귀중한 자원이 너무 쉽게 '소비'되고 있는 것 같다. 1만명 넘는 해외 관광객이 모인 맥강파티나 워터밤 등 대규모 '행사장'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고유성을 갖지 않는 상상플랫폼은 도시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아직 공식 개관 전이므로, 앞으로 도쿄 공공화장실 같은 상상력의 기획이 나올 여지는 있다. 겉치레만 따라하자는 얘긴 아니다.

/박경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