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이달부터 '주 48시간'으로 늘어나
국내 대기업 비상경영 임원 근로시간 연장
한국 노동생산성 OECD 33위 바닥도 부담
4차산업으로 저임금 주4일 불가피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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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칠말팔초'(7월 말∼8월 초)의 바캉스 시즌이다. 비수기 휴가문화 확산과 고물가 여파로 올여름 피서특수는 별로일 전망이나 MZ 셀러리맨들은 모처럼의 해방에 설렌다. 그런데 노동자 천국인 유럽에서 무거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스에서 이달부터 주6일 근무제가 실시된 것이다. 작년에 개정한 노동법에 지속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의 '주 40시간'에서 '주 48시간'으로 늘렸다. 소매업, 농업, 일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우선 적용된다. 그리스 노동계는 근로조건 악화를 우려하며 반발하나 집권 여당인 신민주주의당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맞섰다. 현재 그리스에는 근무 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지만 적절한 보상을 못 받고 있다. 법정 근로시간 초과근무는 불법이어서 사업장들이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때문이다. 개정노동법은 추가로 8시간을 더 근무할 경우 사용자는 피고용자에게 임금 40%를 추가로 지불하도록 명시했다.

그리스의 젊은 청춘들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역사의 반동에 실망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 차례의 국가 부도 위기를 겪었음에도 경제가 호전되지 않아 주6일제가 국가표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프랑스, 독일, 영국, 노르웨이, 아일랜드, 스페인 등에서는 주 4일제 근무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벨기에는 2022년 2월에 주4일 근무제를 공식화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글로벌 트렌드화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는 1908년 미국 뉴잉글랜드의 목화농장에서 유태인들이 안식을 목적으로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쉬던 것이 효시였다. 1926년에 헨리 포드가 노동자복지 차원에서 토·일요일에 기계들을 강제로 멈춘 이후 1938년 미국에서 주5일 근무가 법제화되었다. 주 5일 근무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배경이다. 국내에서는 2000년 김대중정부가 주 40시간(주5일) 근로를 천명, 2002년 7월부터 은행들이 일제히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했으며 노무현정부 첫해인 2003년 8월에 국회는 주5일근무제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했다. 2005년 7월 모든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면서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었다. 주 4일제 근무도 점차 확산 중이다. 화장품업체 에네스티가 국내 최초로 2010년에 주 4일 근무제를 채택한 이후 카카오게임즈가 2018년 7월에 '놀금'제도를 도입해서 MZ직원들의 찬사를 받았다. SK그룹은 대기업 최초로 2019년 5월부터 일부 사업장에서 월 2회 주 4일 근무를 시행했으며 세브란스병원은 2020년 8월부터 실시했다. 지난 5월 HR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3천576명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설문한 결과 86.7%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60.6%는 임금이 줄어도 주 4일 근무를 선호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근로시간 연장 조짐들이 간취되고 있다. 삼성그룹이 올해 4월부터 비금융 주요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주 6일 근무제를 시행했다. 포스코는 지난달부터 중역진에 한해 주 4일 근무에서 주 5일 근무로 전환했으며 SK도 주 4일제, 재택근무, 유연근무 등을 폐지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7월1일부터 임원들이 주 6일 근무를 개시했다. 국내에서는 주 4일 근무제가 채 정착하기도 전에 자취를 감추게 생겼다. 저출산·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점차 감소하는 터에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 전운 고조 등은 점입가경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OECD 33위로 바닥인 점도 부담이다. 인사전문가들은 근무일 단축으로 업무효율이 향상된다는 점에는 거의 동의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주 4일 근무제는 환상인가? 걱정하지 마시라. RPA(로보틱 처리자동화), OCR(광학문자 인식), AI(인공지능) 등의 4차 산업혁명 진전으로 기술적 실업 축소를 위한 낮은 임금의 주 4일 근무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경제학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평론가인 파이낸셜 타임즈의 간판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조만간 인류의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불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직장은 더 이상 만족스러운 수입원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단언했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