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401000285500028231

"…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김민기는 서울미대 2학년 재학 중이던 1971년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의 작곡가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아침이슬'과 함께 '상록수'는 반독재 집회와 시위 때마다 광장에 울려 퍼졌다. 김민기는 천재적 감수성으로 삶을 은유했건만, 투쟁의 상징이 됐다. 군부 독재정권은 그의 노래에 반정부 딱지를 붙였다. '아침이슬'을 포함해 '친구', '꽃피우는 아이', '저 부는 바람' 등 총 10곡의 자작곡이 수록된 한국 최초 싱어송라이터 음반 1집은 판매금지 1호의 영예(?)를 안았다. 김민기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념의 경계에서 추앙과 박해를 동시에 받았다.

1973년에는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 극음악을 작곡했고, 1977년 군 만기제대 후에는 부평의 한 봉제공장에 취업했다. 이어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담은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발표했다. 1984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해 프로젝트 음반을 내기도 했다. '운동권 노래의 대부'라는 수식을 어느 순간 운명처럼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30대의 김민기는 민통선 소작농으로, 탄광 광부로, 김 양식장 잡역부로 살았다. 세상 낮은 곳에서 '앞것' 뒤에서 일하는 묵묵한 '뒷것'의 책임을 다했다.

1991년 40세부터는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개관하고 공연 연출가로서 혼을 쏟았다. 전 배역 공개 오디션이라는 파격 시스템은 '학전'을 실력파 배우의 산실로 만들었다. 김윤석·황정민·설경구·조승우·장현성은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기도 했다. 1994년 초연해 15년 동안 4천회 이상 무대에 올린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기념비적 작품으로 기록됐다. 돈 안되는 아동·청소년극에도 소명을 이어간 '학전'은 재정난으로 33년 만인 올해 3월 폐업했다. 학전에 대한 '책임 있는 미련함'은 김민기 정신으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겨울내복 같은 '아침이슬'을 남긴 고(故) 김민기는 오늘 영면에 든다. "고맙다. 할 만큼 다했다." 시대의 상징이자 거장 김민기가 세상과 이별하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이다. 외려 대중들이 그에게 전하지 못한 찬사 아닐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