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창조·해석 기쁨은 사라지고
오로지 도파민 자극 쾌락만 날 지배
시간들여 털있는 짐승을 그려 보고
서로 응원하는 마이너 운동 배우자
집중력 물론 지치지 않는 체력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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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시인
집중력이 사라졌다. 하고자 하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 그러니까 읽던 책이 재미있어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밥 먹는 것도 잊고 마지막 책장이 덮일 때까지 몰입하여 읽던 그런 능력이, 친구가 보낸 편지에 답장을 보내기 위해 겨울밤에 부엌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밥상을 책상 삼아 고심하며 몇 시간이고 밤이 새도록 편지를 쓰던 능력이, 과자 사 먹으라고 할아버지께서 주신 백원짜리 동전이 제법 모이면 학교 앞 문방구로 달려가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프라모델 조립식 장난감들을 도서관 빽빽한 책등마냥 훑다가 지구를 구할 로봇을 고르듯 고심과 갈등 끝에 하나를 골라 집으로 날듯이 달려와 머리가 아파 끙끙 소리가 나도록 하루종일 앉은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불상처럼 앉아 조립도를 보며 변신 로봇을 완성해나가던 능력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집중력의 자리는 이제 스마트폰이 차지해버렸다. 버스에서도 전철에서도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잠이 들기 전에도 책을 읽던 습관이 사라지고 이제는 스마트폰을 열어 최신뉴스를 훑어본다. 그러다가 금방 흥미를 잃고 다시 SNS에 들어가서 새로 올라온 각종 소식들을 열람한다. 스크롤을 올리며 친구들의 이 얘기 저 얘기들을 읽다가 쇼츠, 릴스 등 각종 짧은 동영상을 보게 된다. 한번 보면 자꾸 그다음 영상을 보게 된다. 영상을 보다가 질리면 게임을 한다. 복잡한 것은 머리가 아프니까 간단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게임을 한다. 벽돌을 쌓거나 부수거나 피하거나 맞춘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다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최신뉴스를 읽는다. 그렇게 돌고 도는 손안의 스마트 세상을 즐기다보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점점 우울해진다. 불안도가 증가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무언가를 생산하고 창조하고 주체적으로 해석해나가던 기쁨은 사라지고 오로지 도파민을 자극하는 수동적인 쾌락만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다. 어떠한 생산이나 창조에도 복무하지 않는 실체 없는 집중은 결국 자존감을 떨어드리고 우울감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으므로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그 중 효과가 있었던 것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첫째, 털 짐승 그리기다. 볼펜 한 자루와 종이만 있으면 된다. 읽어야 할 책이 있거나 써야할 글이 있을 때, 불안해지거나 우울해진 마음을 안정시켜야 할 때 시도해보면 좋다. 왜 하필 털 짐승인가. 아주 많은 획을 하나 하나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잘 그릴 필요는 없다. 그저 털이 있는 동물 중에 맘에 드는 동물을 하나 고르고 대충 엉성하게 윤곽을 그린 후에 털을 그려 넣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림을 못 그린다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저 시간을 들여 천천히 털을 한 오라기 한 오라기 긋다가 보면 어느새 집중력이 생기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털이라는 것이 많이 그리면 그릴수록 윤기가 나고 생동감이 생겨난다. 한두 시간 마음 잡고 털을 그려 넣을 수 있다면 꽤 보기 좋은 드로잉 한 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귀여운 고양이나 강아지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다. 나는 곰으로 시작했다.

둘째, 몸을 쓰는 운동을 배워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운동을 취미로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최대한 마이너한 운동을 배워보자. 마이너한 운동은 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대체로 일반적인 운동보다 더 환영을 받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파트너이기에 서로에게 잘 해주고 응원과 지지를 주고받게 된다. 강한 소속감과 자부심이 생겨나기도 하고 비밀스러운 취미로 혼자 만족하고 매만지며 조용히 수련할 수도 있다. 집중력은 물론이고,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과 근력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최근에 중국 무술을 배우고 있다. 창술을 가르친다는 어느 문파에 들어가 수련을 시작했다. 기초단계라서 아직 창술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창대를 만들기 위해 연필 깎는 칼로 나무를 깎고 있다. 사각사각 나뭇결을 따라 칼을 밀어올리다가 보면 어느 세월에 완성하겠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땀을 뻘뻘 흘리며 몇 시간 째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원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