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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양궁이 또 하나의 신화를 썼다. 여자양궁 대표팀은 2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단체전에서 슛오프 끝에 중국에 5대 4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올림픽 10연패의 대업을 달성했다. 한국양궁의 적수는 이제 한국양궁 자신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양궁은 인간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지난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양궁 사상 최초로 3관왕을 달성한 안산도 국내 선발전의 문턱을 넘지 못할 정도로 한국양궁은 선수층이 두텁고 선수들 간의 실력도 백지장보다 더 얇은 나노미터급 차이에 불과하다. 이로 미루어보면 우리에게는 남다른 활쏘기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우리 활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국조오례의', '무예도보통지', '삼국유사', '삼국사기' 정도의 국내 사료와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의 국외 자료가 전부다. 활에 대한 연구도 1929년에 나온 이중화의 '조선의 궁술'이 최초다. 이는 일제강점의 상황에서 활을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고취하고자 한 민족주의적 연구다.

우리나라 활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 고산리 유적과 서포항유적 1기층, 오산 제1문화층 등에서 석촉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반구대 암각화와 경주 금장대 암각화 그리고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에서 말을 탄 무사가 호랑이와 사슴을 활로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으니 우리 활의 역사는 최소 기원전 1만~7천년 사이부터 본격화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랜 활의 역사만큼 역대급 명궁들도 많았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부여 말로 활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신궁으로 숱한 일화를 남겼고, 조선의 22대왕 정조 또한 명궁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양궁의 10연패 뒤에는 이런 찬란한 역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양궁은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됐고 공교롭게도 1900년 파리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1983년 대한양궁협회가 창설되자마자 한국양궁은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4년 서향순의 LA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현 파리올림픽까지 한국양궁은 계속 금빛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항상 국민을 기쁘게 하는 세계 최강 한국양궁에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낸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