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펜싱, 사브르 단체전 3연패
오상욱, 개인전 이어 2관왕 등극 쾌거
박상원·도경동, 화려한 올림픽 데뷔
구본길, 든든한 맏형… 도쿄 이어 金
대한민국 검객 4명이 합작한 금빛 찌르기가 프랑스 파리의 '거대한 궁전'을 정복했다. 이마에 헤어밴드를 두른 박상원(대전시청)과 짧은 머리의 군인 신분 도경동(국군체육부대) 그리고 파리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오상욱(대전시청)과 든든한 맏형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 '뉴 어펜저스(펜싱+어벤저스)'가 탄생한 순간이다.
한국 사브르 남자 대표팀은 1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헝가리를 45-41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상욱은 개인전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 2관왕을 달성했다. 경기를 마치고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오상욱은 "아시아, 한국에서 올림픽 사브르 2관왕으로 역사를 세워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경기를 돌아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었기에 앞으로 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단체전을 준비하면서 흔들렸던 순간도 있다고 했다. 오상욱은 "'이렇게, 저렇게 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가 아팠다. 결승전을 치르기 전 프랑스 경기 때부터 그랬다. 아예 백지상태가 됐다"며 "동생들이 '형은 그냥 형이야'라며 격려를 많이 해줘 동작을 찾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번 올림픽 2관왕으로 세계 최고가 된 것에 대해 그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결승전 경기를) 더 수월하게, 기분 좋게 끝냈다면 30분 정도는 자만할 수 있었지만 마무리가 아쉬웠다"며 "메달을 따서 기쁨도 있지만 '다음에 저 선수를 또 만나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고 답했다.
후배들과 함께 오상욱에게 용기를 불어준 건 동료이자 든든한 형 구본길이다. 구본길 역시 8강전부터 관록을 보이며 2020 도쿄 대회에 이어 또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전이 치러진 이날은 구본길의 둘째 아이 출산예정일이기도 했다.
그는 "사실 올림픽은 이번이 마지막이고, 다음 목표는 2026 나고야 아시안게임"이라며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 금메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이자 힘의 발판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후배들이 '어펜저스'라는 별칭에 압박감이 있었는데, 그걸 잘 버텨내 줬다. 후배들한테 고맙다"고 말했다.
기존 사브르 단체팀 멤버였던 김준호·김정환의 뒤를 이어 합류한 박상원과 도경동은 화려한 올림픽 데뷔 무대를 마쳤다. 특히 '예비 엔트리'에서 '신 스틸러'로 활약한 도경동은 이날 결승전의 주인공이었다.
도경동은 "올림픽 금메달은 운동선수로서 최종 목표라고 생각하고 운동해 왔는데,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어 꿈만 같다"며 "개인적인 기쁨보다는 펜싱의 역사를 쓰는 3연패를 할 수 있어 기쁘다. 상욱이 형도 2관왕을 해서 축하해줬다. 지금은 '오상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웃었다.
7라운드에 구본길과 교체한 도경동은 5점을 내리 획득하며 우승에 가속을 붙였다. 도경동은 올림픽 데뷔 경기에 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데 대해 "내일 일어나 볼을 한번 꼬집어보고 현실인지 봐야 할 것 같다"며 "코치님께서 '네가 하면 무조건 이긴다'고 믿어주셨다"고 힘줘 말했다.
박상원도 "형들과 코치님이랑 힘들게 준비했기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며 "3연패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많았고 걱정도 했다. 그렇지만 해야 하니깐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직진했다"고 회상했다.
원우영 사브르 코치는 "세대교체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도경동, 박상원 외에도 사브르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며 "이번에 3연패를 했지만, 나아가 여자 양궁처럼 10연패를 할 수 있도록 지도자와 선수들이 하나가 돼 꿈을 이뤄보겠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파리/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