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담' 모든 이에게 지급 불가능
노동방식 변화올지 학자들 부정적
성과 논하기 이르지만 경기도 정책
더 많은 도민들 체감하도록 알리고
지금보다 더 과감히 재원 투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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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 민선8기를 상징하는 핵심 개념은 뭐라 해도 '기회'일 것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반복적으로 국민이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 더 나은 기회'를 누리게 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민선8기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

사실 기회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쓰면서도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것이 지자체의 도정 방향과 정책으로 사용될 때는 더욱더 모호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막연하게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기회는 나름대로 연원이 오래되고 또 정치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왔다.

먼저,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 기회가 '기회균등(평등)'이라는 개념으로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전문(前文)에 나오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구절은 제헌헌법(1948년)에도 그대로 나오는데, 이러한 '기회균등'의 정신은 3·1운동으로 탄생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제헌의회 의원들이 임시정부의 핵심가치로 생각하고 반영한 것이다.

기회를 정부나 정당의 강령에서 강조한 대표적인 정치세력이 미국과 영국에서 '제3의 길'을 제창한 사람들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신노동당'을 천명하면서 기회, 책임, 공동체, 민주주의를 제3의 길의 핵심 개념으로 제시하였고, 3번째 임기에 도전한 2005년에는 노동당 강령에 아예 '기회 사회'를 지향하겠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도 기회, 책임, 공동체의 가치에 기초한 시민-정부 관계를 요청하는 뉴올리언스(New Orleans) 선언(1990년)을 지도철학으로 삼아서 집권했다.

결국 기회를 강조한 제3의 길의 특징은 사회정의와 평등 같은 진보가치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여전히 확고히 하되, 다만 시대적 변화에 맞춰 그 달성 수단은 유연하게 하는데 있다. 또한 실질적 기회를 모든 시민에게 제공하면서, 동시에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고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데 자기 역할을 다하는 개인의 책임도 간과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회라는 가치를 경기도정에서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경기도가 기회와 관련해서 핵심정책으로 내세우는 것이 기회소득이다. 기회소득은 예술인, 장애인, 체육인, 농어민 등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일정 부분 소득을 보전해줌으로써 각자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정책이다. 모든 정치와 행정의 목표가 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한 삶의 영위를 돕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 정신에 부합하면서도 현실성을 갖춘 정책이다.

기회소득과 유사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정책들과 견주어도 비교우위가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기본소득은 기술 발전에 따른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노동하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모든 이에게 일정 수준의 현금을 조건 없이 지급하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재원 부담으로 인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소득을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그 기본전제인 대대적인 노동방식의 변화가 실제로 도래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학자들이 부정적이다.

또한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안심소득의 경우 저소득층에게 두텁게 지원하는 점에서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에 일정 부분 효과가 있지만, 안심소득을 지급받은 가구의 지출 형태에 대한 조사 결과 개인의 역량제고나 가치 창출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우리 헌법정신과도 연결되어 있는 경기도의 기회 철학과 정책을 더 많은 경기도민이 알고 체감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 경기도민의 기회의 문이 열릴 때 김동연 지사의 기회의 문도 더불어 활짝 열릴 것이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