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피해자 보증금 채권 상속 불구
法 "본인 아냐 안돼" 절차 복잡
임대주택 자격까지 잃을 위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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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7일 스스로 생을 등진 전세사기 피해자 박효선(가명·사망당시 31)씨의 인천시 미추홀구 전셋집 현관문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경인일보DB

"언니 유언을 꼭 지키고 싶었는데…."

박지선(28·가명)씨는 지난해 4월17일 인천 미추홀구 전셋집에서 세상을 등진 언니 효선(사망 당시 31·가명)씨의 하나뿐인 여동생이다.

그의 언니는 미추홀구 등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를 벌인 '건축왕' 남헌기(62)의 피해자다.

전셋집을 재계약할 당시 보증금을 증액하면서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자 좌절한 채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2월 27일자 3면 보도=삶 놓은 해머던지기 국대 출신… 사라진 희망에 '죽음으로 외침'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③])

최근 연락이 닿은 박씨는 언니의 죽음 이후 또 한 번 망연자실해 있었다. 언니가 살던 전셋집에 대한 경매 유예를 법원에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이다.

■ 유족에겐 허락되지 않는 전셋집 경매 유예


박씨의 언니는 돌려받아야 할 전세보증금 9천만원(보증금 채권)을 남겼다. 자매가 어릴 때부터 연이 끊긴 부모는 상속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박씨는 '죽음으로 탄원한다'는 언니의 유언을 마음에 새기며 상속을 받았다. 언니의 전셋집에 임차권등기(보증금을 돌려받을 임차인의 권리)를 설정하고, 전세사기에 가담한 부동산 중개인을 고소하는 등 언니가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처리했다.

박씨는 최근 인천지방법원 경매계를 찾아가 언니의 전셋집 경매 유예를 신청했으나 "전세사기 피해자 본인이 아니라서 안 된다"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언니의 이름이 적힌 국토교통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문도 소용없었다. 그날은 2차 경매가 열린 날이었다. 다행히 당일 경매에선 낙찰자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박씨는 초조할 수밖에 없다. 3차 경매 일정은 오는 30일로 잡혔다.

■ '전세사기 피해자' 상속 인정 '산 넘어 산'


박씨는 부랴부랴 국토부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연락해 언니가 생전에 받아놓은 피해자 결정문의 이름을 상속자로 바꿀 방법을 문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난관에 부딪혔다. 박씨가 자신의 명의로 피해자 결정문을 바꾸려면 언니가 살던 전셋집으로 주소를 옮겨야 한다.

하지만 지난 5월 둘째를 출산한 그는 얼마 전 가족과 함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신생아가구 임대주택으로 이사했다. 박씨가 주소를 옮기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박탈된다.

전세사기를 당한 주택에 살고 있지 않으면 국토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가 아닌, '전세사기 피해자 등'이란 자격으로 결정문을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매 상속자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부모의 상속포기 확인서, 인감 등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박씨는 오래 전에 연이 끊긴 부모에게 연락하기도 여의치 않다.

만약 어렵게 연락이 닿아 서류를 갖추더라도 '전세사기 피해자 등'은 우선매수권 행사 등 전세사기 특별법 지원에서 제외된다.

박씨는 "경매에서 언니가 살던 전셋집이 낙찰되면 언니의 전세보증금을 되찾을 기회가 사라진다. 더는 손 쓸 방법이 없어 상속받은 것도 큰 의미가 없게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