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격을 당한 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화재 현장은 녹아내린 차량들의 잔해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한 대의 전기자동차에서 시작됐다. 충전 중인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주차해놓은 전기자동차에서 발생한 불은 이내 주변 차량들로 옮겨붙었다. 40여 대의 차량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타버렸고, 100여 대는 그을음 등의 피해를 입었다. 주민 수백여 명이 긴급 대피하고 어린이들을 포함한 23명이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아파트 1천500여 세대 중 3분의 1 세대의 전기 공급이 끊겼다. 많은 주민들이 졸지에 난민 신세가 됐다.
전기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관련 화재 사고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3건에 불과했던 전기자동차 화재가 지난해에는 72건으로 급증했다. 경기도의 경우 2019년 1건에서 2020년 3건, 2021년 6건, 2022년 12건, 2023년 21건으로 증가했다. 인천에서도 2020년 2건, 2022년 2건에서 지난해 5건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지난달 초까지 벌써 4건이나 발생했다. 화재는 대부분 전기자동차의 동력원인 배터리의 이상에서 비롯된다. 배터리 셀 하나에 불이 나면 마치 도미노처럼 다른 셀로 옮겨붙는 열폭주 현상을 보이면서 완전 진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난 1월 안양 만안구 버스차고지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버스에서 발생한 화재는 8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이번 화재 역시 진화에 8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친환경 자동차법에 따라 이제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전기자동차 충전시설을 갖추게 됐다. 특히 요즘 짓는 아파트들은 주로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는데 충전 시설 또한 그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불이 붙은 배터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전용 장비를 갖춘 주차장은 거의 없다. 전용 장비를 갖춘 소방차가 출동한다 하더라도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전기자동차 화재의 특성과 지하주차장 구조의 특수성이 맞물리면 십중팔구 이번 화재처럼 대형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와 소방청이 '공동주택 전기차 화재대응 매뉴얼'을 만들긴 했으나 지하 3층 이하엔 충전구역을 피하라는 식의 권고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국회와 정부가 서둘러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새로 만들어 국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