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시리즈
노기훈, 노량진~인천역까지 걸으며 촬영
멀리서 본 '도림천'·걷다 만난 '김문성' 등
'사진 도큐먼트' 정의, '인천'서 작업 영향
흔하디흔한 도심의 풍경을 배경으로 어슴푸레한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조명을 켜기 시작한 신도림역 지상 승강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점을 찍은 것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승강장 밑으로 흐르는 도림천은 정비공사 중이다. 불 켜진 승강장이 도시와 하천의 경계를 짓는 듯 보이기도 한다.
2013년과 2014년 연이어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4기, 5기) 입주작가로 활동한 사진가 노기훈의 '1호선'(Line 1) 시리즈 중 신도림역과 영등포역 사이에서 촬영한 '도림천'(2015년)이다.
노기훈 작가의 '1호선'은 그가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2013년 시작해 2016년 3월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에서 개최한 전시로 마침표를 찍은 프로젝트다. 경인선이라 부르는 수도권 전철 1호선 노량진역에서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가 있는 인천역까지 26개 역의 경로를 두 발로 걸으면서 본 것과 만난 사람들을 찍었다.
'가족사진 찍는 카메라'를 떠올리면 되는 4×5인치 필름의 대형 카메라와 삼각대를 짊어지고 역과 역 사이를 걸었다. 사진에 담을 인물들을 현장에서 섭외하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장노출로 촬영하는 느린 작업 방식으로 하루에 많으면 2개 정거장을 이동했다고 한다.
작가는 인천역~노량진역 선로 좌측과 우측을 모두 왕복했다. 1호선 선로는 도심을 좌우로 단절했으므로 그 좌우 풍경도 무척 다르다.
'도림천'처럼 멀리서 응시한 풍경이 있고, 도화역과 주안역 사이를 걸으며 만난 주민을 찍은 사진('김문성', 2015년)이 있으며, 동인천역과 도원역 사이에 있는 가게 안 모습('채미전', 2014년)을 봤고, 인천역과 동인천역 사이 인천차이나타운 중화요리점 주방의 '중화팬'(2013년) 같은 오브제에도 집중했다.
작가는 “1899년 한강철교 준공 전 경인선 노선인 ‘인천~노량진’ 사이에 있는 26개 역을 걸어 다니며 철로 곁을 떠다니는 인간 군상과 일상 그리고 풍경을 촬영한 사진 도큐먼트(Document)"라고 '1호선' 시리즈를 설명했다.
"한국 미술은 '서울 중심의 미술'과 서울이 아닌 어느 지역에서 일어나는 '지방미술'의 경계가 굉장히 명확한데, 이와 달리 인천은 경계성을 함유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주류 미술계인 서울의 자장(磁場)에 들어가자니 인천만이 가진 네트워크나 커뮤니티가 분명하고요. 그러한 드나듦에 대한 매력이 굉장한 도시죠. '1호선'이란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인천이란 장소가 가진 힘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을 통해 일본 요코하마의 대표적 복합문화공간 '뱅크아트1929'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세달 동안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일본을 오가며 '일본판 1호선' 격인 '달과 빛' 시리즈를 진행했다.
일본 1호선은 '개항지' 요코하마 사쿠라기초역부터 도쿄 신바시역까지 약 30㎞로 경인선 인천역~노량진역 간 거리(약 32.9㎞)와 비슷하다. 요코하마에서 도쿄로 2번,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2번을 각각 걸으며, 그 길의 앞뒤로 사계절 밤 풍경을 촬영했다.
'1호선' 시리즈와 유사한 방식의 작업이었지만, 성격은 전혀 달랐다. 사진의 역사를 보면 인공의 빛이 들어왔을 때 비로소 야경 사진 촬영이 가능해졌다. 근대성을 표상하는 인공의 빛. 이것을 카메라로 포착한다면, 시간을 거슬러 근대 일본을 살아간 사람의 망막에 자각된 '근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의 '1호선'이 작가가 경계 혹은 주변부를 걸으며 마주한 있는 그대로의 풍경과 사람을 담았다면, 일본의 '달과 빛'은 달빛과 가로등 같은 인공의 빛에 비춰진 근대성의 탐구다. '달과 빛' 시리즈는 2018년 요코하마 아트뱅크와 2020년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됐다.
작가는 2020년부터 인천 중구 신포시장 인근에 사진가들의 공유 공간이자 도서관인 'LBDF'(사진의 도서관)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과 거리감을 가지면서도 지방이라는 이미지에 포섭되지 않는 공간이어야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사진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