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 강제노역 피해자들 무시
위대한 독립운동 애국자들의 혼에
대못박는 악행 왜 그냥 두고만 보나
제발 민족혼 먹칠하는 외교 멈추길
얼마 전 왜정 때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 온갖 노동으로 참담한 고통을 당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로 한국의 대법원은 일본 정부나 기업체가 배상해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일본 정부의 뜻에 따르느라 이른바 '제삼자 변제'라는 참으로 해괴한 이론을 내세워 우리나라에서 배상해주어야 한다고 대법원의 판결을 위반하는 외교를 감행하고 말았다. 일본의 역사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토가 말했듯 제삼자 변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정부는 또 다른 굴욕외교를 자행하고 말았다.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로 여러 논란이 있었다. 마침내 우리 정부는 사도광산에 끌려가 심한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들을 무시하였다. 일본은 그런 강제노역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고 등재를 주장하였다. 우리 정부는 항의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일본의 뜻에 용인해주고만 외교 참사를 일으키고 말았다. 한겨레신문의 다케우치 야스토 인터뷰 기사에 '윤 정부 안보 정책에 밀려, 강제 동원 피해자 존엄 회복 붕괴'라는 제목부터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제삼자 변제'의 연장선상에서 사도광산의 문제도 제기되고 말았다니 이에 우리 국민들이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가는 국가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국혼(國魂)이 있고 민족혼이 있다. 우리 민족은 민족혼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안중근·윤봉길·유관순 등 애국자들이 나와 민족해방을 맞을 수 있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바로 이 나라 민족혼이 일으켜 세운 위대한 독립운동이었다. 민족혼은 3·1혁명으로 승화되어 우리는 끝내 해방을 맞고 국가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여 식민지 나라로 만든 침략자였다. 이제 해방이 되고 독립국인데, 침략자들의 만행에 모두를 묵인하고 모두를 눈감아 준다면 그때 당한 그 수많은 피해자의 원혼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나라를 빼앗기자 울분과 분통이 민족혼을 살려내 전라도에서는 매천 황현이 음독자살하였고, 경상도에서는 향산 이만도가 24일 단식하다 운명하고 말았다. 그런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민족혼이 우리 민족을 이끌어주어 국가로서 존재할 수 있었는데 피해배상을 해주지 않아도 좋고, 강제노동문제는 언급도 안 해도 좋기만 하다니 우리 민족혼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심지어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교과서에 버젓이 올려도 항의조차 하지 않는 우리 정부는 누구의 정부인가.
저 오래전 임진왜란 때의 일을 기억해 본다. 왜의 침략으로 진주성이 무너지자 진주성을 지키다 패전한 3장사는 남강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 민족혼을 지켜냈다. 그러면서 그들의 시에 '파불갈혜 혼불사(波不竭兮 魂不死)'라고 읊었다. '물결이 마르지 않는 한 우리의 혼도 죽지 않으리라'라는 뜻이니, 왜국의 침략이 얼마나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었으면 죽어가지만 혼은 살아서 너희들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했겠는가. 그런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 왜 오늘의 정부는 그냥 두지 않아야 할 일본을 '그냥' 두고만 있을까. 잘하고 있는 일이라면 그냥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혼에 대못을 박는 그런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데도 왜 그냥 두고만 보아야 하는가.
나는 1964년 대학생으로 한일회담이 굴욕적이라는 판단에서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동료들과 함께 회담 반대운동을 전개했었다. 이제 보니 그때의 굴욕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오늘의 외교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때 우리는 죽지도 못했지만, 힘이 약해 회담을 막지도 못했다. 이제 다시 원통한 생각을 참지 못하며 '시일야방성대곡'의 글귀나 되뇌게 된다. 정부는 제발 민족혼에 먹칠하는 이 나쁜 외교를 하루속히 멈추기를 바란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