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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앞에는 천하장사도 별 수 없다. "삼복기간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보양식을 먹는 복달임 같은 우리만의 독특한 피서법도 생겨났다. 여름나기가 힘들었던 것은 옛날 선인이나 지금의 우리나 매한가지였다. 선인들의 피서법 하면,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署八事)'만한 고품격 피서법을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로 정약용의 호로 널리 통용되는 다산은 정작 다산 본인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 등을 포함하여 다산의 호는 알려진 것만 해도 6개나 있었고, 귀농(歸農)이란 아명에 미용(美庸)이라는 자가 있었다. 다산이란 호는 현대 연구자들이 의도적으로 널리 퍼트린 명칭이다.

다산이 제시한 8가지 피서법은 "솔밭에서 활쏘기(松壇弧矢),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槐陰추韆), 텅 빈 정자나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虛閣投壺),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淸점奕기), 연못에서 연꽃구경하기(西池賞荷),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東林聽蟬), 비오는 날 한시 짓기(雨日射韻), 달밤에 발씻기(月夜濯足)" 등이다. 소리 내서 읽어만 봐도 더위가 물러가는 것 같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폭염의 기세가 대단하다. 2일 새벽 강릉시는 31.4도로 한반도 기상 관측사상 가장 높은 일 최저기온을 갈아치웠다. 4일에는 경기 여주시 점동면 기온이 40도를 넘어서는가 하면 제주 한라산을 제외한 전국에 폭염 특보가 내려졌다. 폭염의 원인은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겹치는 '이중고기압'이 한반도 전역을 덮으면서 햇볕에 달궈진 공기가 단열상태가 되어 기온을 끌어올리는 단열승온(斷熱昇溫) 현상 때문이라 한다.

'염소 뿔도 빠지는 삼복더위'에 선인들은 통풍이 잘 되는 정자나 나무그늘에서 쉬거나 탁족을 나갔다. 또 인적 없는 숲속에서 옷을 다 벗고 볕을 쬐는 풍즐거풍(風櫛擧風)으로 염증도 막고 더위를 쫓는 풍욕도 있었다고 한다. 풍욕은 남의 이목을 조심해야 하는 단점이 있으나 체액을 중화시켜 질병 예방에 큰 효과가 있는 피서법이다. 무더위에는 무엇보다 적절한 휴식과 수분 섭취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덧붙여 폭염 경보가 발효됐을 때만이라도 잠시 정쟁을 멈추는 '폭염기 정쟁 일시 중지법'을 법제화하여 운용하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