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 Pick] 재외동포청장 첫 행보, 히로시마
'제55회 원폭 피해자 위령제' 참석
"정부가 위로 못해 무거운 책임감"
피해자협 '일관된 정책 기조' 당부
재외동포 전담기관을 이끄는 이상덕 재외동포청장은 취임 직후 첫 행선지로 히로시마를 찾아 제2차 세계대전 미국 원자폭탄 투하 피해를 입은 한인들을 만났다.
한인 원폭 피해자들은 그동안 당사국인 미국·일본과 한국 정부 간 '정치적 특수성' 때문에 외면받았는데, 현 정부에는 이전과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상덕 재외동포청장은 5일 원폭 폭심지 인근 히로시마평화공원에서 열린 '제55회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제'에 참석해 "전쟁의 참화와 차별로 얼룩진 고통의 역사가 있었다"며 "지난 세월 우리 정부가 희생자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추도사를 했다.
이 청장의 추도사에 담겼듯 한국 정부는 그동안 한인 원폭 피해자들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인 원폭 피해자들이 역사 속에서 외면받은 이유는 미국이 원폭 투하라는 비극적 사실을 뒤로하고 일본은 전범국에서 원폭 피해국을 주장하고 나선 복잡한 국제외교관계에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과 인접 국가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본 사이에서 사실상 한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지원 업무를 뒷전으로 미뤘다. 당시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에 피폭된 한인에 대한 별도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한인 원폭 생존자들은 당시 일본에 있던 한인 10만명 중 5만명이 피폭돼 숨졌고, 5만명은 생존했지만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역대 정부 중 최초로 한인 원폭 피해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간담회를 가지면서 답보 상태에 놓여있던 피해자 지원 논의에 물꼬를 텄다. 간담회는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한 이후 후속 절차로 마련됐다.
다만 현 정부의 이 같은 행보가 한인 원폭 피해자를 위한 지원 목적보다는 보수 정권 기조에 맞춰 일본과 우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외교적 차원의 거래로 해석하는 관측도 있다.
원폭 피해자들은 정부가 뒤늦게 피해자들을 인정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정책 기조가 지속될 수 있도록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1세대 원폭 피해자인 심진태(81)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전쟁 역사를 알리는 살아있는 기록자로 이제 더 이상 국가로부터 외면받아서는 안된다"면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폭 피해자에 대한 정책이 바뀌는데, 일관된 기조 속에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