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 중심의 불쾌감은 '당연'
'일단 멈춤' 아닌 비판·대안 제시
어린이집-유치원·국립-사립
영유아 차별받지 않게 단결 필요
유아교육은 신체·정서·사회적으로 아직 독립적이지 못한 유아기의 특성상 교육과 돌봄을 이분화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0~2세는 세상에 대한 신뢰와 불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주도와 부끄러움을 경험하는 시기이니 0~2세의 돌봄 안에는 세심한 교육적 관점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신체적·언어적 독립을 일정 수준 획득한 3~5세는 0~2세와는 다르지만 건강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 안에 여전히 세심한 돌봄이 필요합니다. 3~5세뿐아니라 0~2세의 학교인 어린이집에 보호와 교육을 의미하는 보육이란 개념을 도입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유아교육에서 0~2세, 3~5세를 구분한 것은 영유아의 발달 특성을 영아기와 유아기로 나누어 설명하기 위함이었으나 '돌봄'이란 단어는 그동안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돌봄'이란 단어는 교육학에서는 초등학교 방과후 프로그램을 정규교과과정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방과후 돌봄 업무가 교사에게 과중하게 부여되며 돌봄영역을 학교 밖으로 빼려는 교사단체에 의해 부각됐습니다. 다시 말하면 초등학교에서의 돌봄은 정규교육과의 분리를 위한 방과후과정이란 의미이나, 유아교육에서의 돌봄은 연령 및 교사자격을 구분하여 위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전복되어 사용된 셈입니다.
그러니 보육교사를 중심으로 '갈라치기 유보통합'에 대한 불쾌감은 당연한 반응이겠지요. 그러나 선생님. 유보통합의 시간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유보통합은 노동하는 부모에 대한 양육서비스로 인식되었던 어린이집을 교육부로 이관하며 서비스보다는 영유아의 건강하고 안전한 발달을 위한 교육에 방점을 찍고 0~5세 기관 교육 모두를 교육적 관점에서 우선 접근하겠다는 선언이자 실행입니다. 교육노동자가 아닌 돌봄노동자라는 정치적 구획, 혹은 교사이기는 하지만 사립교원으로서의 지위를 확보받지 못했던 교사에게도 초·중·고와 같은 교사의 지위를 부여해 유아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점에서 혁명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유보통합에 대한 반대는 국공립유치원 교사단체에서 통합교사자격을 근거로 가장 극렬하게 나타났던 현상입니다. 그러나 유보통합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찬성이나 반대의 볼모가 되어 유보되거나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문제의식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만 0~5세 영유아가 돌봄과 교육이란 정치적 구획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교사가 교사로서의 지위를 확보받아 초중고 교사와 동일한 안정된 노동환경에서 교육할 수 있도록 방향을 명확하게 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갈라치기 유보통합'은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만 유보통합은 '일단 멈춤'이 아닌 한발한발 걸어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요.
원장단체, 국공립유치원교사단체와 다르게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는 제대로 된 교원단체가 없었습니다. 노동조건이나 환경 등 고용이 불안정하고, 고용이 불안정하니 단체를 조직해 목소리를 내어 장기적 관점으로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간적·경제적 의지를 내기 어려운 구조였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이제는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사립유치원 교사와의 연대를 통해 0~5세 유아교육의 한 울타리 안에서 교사가 차별받지 않도록, 그럼으로써 0~2세와 3~5세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국공립과 사립의 영유아가 차별받지 않도록 단결된 힘으로 유아교육의 혁명을 주도해 주십시오. 함께 힘 보태겠습니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