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크면 오히려 내포된 의미 줄어들어
구체적인 명칭, 기억과 브랜드 관리에 쉬워
2026년 인천 '區 개편' 행정체제 크게 변화
새로운 지명자원 사전 조사와 검토 거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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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세상에는 날마다 새로운 이름이 탄생한다. 신생아가 태어나듯 새로운 도시나 마을이 만들어지고 도로나 철도역, 기구나 시설이 만들어지고 이름도 따라 생겨난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새 이름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지명은 도시 공간에 장소성을 부여하고 방문자들에게는 위치감각을 갖게 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지자체들도 지자체 명칭을 브랜드처럼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땅이름과 대상은 부합해야 마땅하지만 새 이름이 논란거리가 되거나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다.

깊은 고민 없이 부여한 행정구역 명칭들, 방위식 자치단체 명칭이나 숫자로 된 동명이 대표적이다. 최근 이런 명칭에 대한 반성으로 고유어를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고유어를 살려 쓰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이다. 물론 새로운 문제도 있다. 누리, 솔빛, 나래 등 의미나 소리가 아름다운 몇몇 고유어들을 선호하다 보니 정작 고유어로서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큰 이름을 선호하는 경향도 반성해야 한다. 작은 지역이 큰 지역의 이름을 점유하여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큰 지역 명칭이 지역주민들에게는 친근하게 들려 선호할 수 있겠지만 차별성과 고유성을 지니기 힘들어 정작 이름의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경기도 부천시(富川市)는 부평과 인천을 합한 지역이라는 뜻이지, 지금의 부천은 부평이나 인천의 이웃 도시일 뿐 직접 연관이 없다. 옛 부천군의 지명을 고민 없이 사용한 결과로 그 유래를 설명하기 어려운 지명이 되고 말았다. 미추홀구도 큰 지명이다. 남구에서 미추홀구로 바꿀 때 미추홀의 발상지가 인천 남구 문학산과 관교동 일대였다는 사실을 중시한 것이지만, 미추홀은 인천광역시의 옛지명으로 도시의 상징처럼 오래 사용해왔기 때문에 혼란이 따른다. 미추홀도서관이나 미추홀외국어고등학교, 미추홀타워 등과 같은 명칭이 그렇다. 인천의 여러 단체나 상호 등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학산서원이나 문학산과 같은 작은 이름을 사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은 이름은 직관적으로 장소를 환기하는 강점이 있다. 이름이 크면 오히려 내포된 의미는 줄어든다. 개념의 외연은 크면 클수록 내포적 의미는 줄어드는 역설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말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개념이지만 '김 아무개'라고 하면 구체적인 얼굴이나 그 사람의 성격까지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작은 이름, 구체적인 이름이 기억에도 유리하며 브랜드로 관리하기도 쉽다.

지역의 땅이름에는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온 주민들의 생활사가 담겨 있으며, 또한 삶터에 대한 주민들의 상상력이 아로새겨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인문 자산이다. 옛 지명은 상당수가 우리말로 이뤄져 있어 사라져 가고 있는 고유어 보존소 역할도 하고 있다. 인천시 옹진군 승봉도에는 '벗'자가 들어 있는 지명이 유달리 많다. 벗터, 작은벗너머, 큰벗너머, 벗앞, 벗도래 등이 그것인데, 여기서 '벗'은 소금을 구웠던 염벗터라는 의미이다. 그중 벗도래는 벗터를 빙 둘러서 가야 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승봉도 주민들은 대대로 어업보다 소금을 굽거나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섬의 생활사를 지명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2026년 인천시의 행정체제가 크게 바뀐다. 검단구와 영종구가 새로 설치되고, 동구와 중구의 육지부는 통합한 제물포구로 개편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서구도 방위식 행정명칭의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행정체제 개편과 연동되어 바뀌어야 하는 이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지명을 부여할 때,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담고 있는 지명을 찾되 가급적 작은 지명을 찾아야 혼란을 피할 수 있다. 대체로 산이나 강처럼 뚜렷한 지형지물을 활용한 명칭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평소에 지명자료를 조사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해두고 지명이나 도로명, 공공시설 명칭을 부여할 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새 지명을 부여할 때 지명자원에 대한 사전 조사와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