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물가도 두말하면 잔소리가 됐다. 4인 가족이 한번 외식하면, 돈 10만~20만원이 우습게 나가는 시대가 됐다.
소줏값은 이런 외식 물가의 부담을 한층 더 키웠다. 이른바 '나 때는' 식당에서 소주 한 병을 2천~3천원 주고 마셨다는 얘기라도 꺼내면 '아재' 소리 듣기 딱 좋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소주 한 병 값이 2천~3천원 했던 시기가 그다지 먼 시기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10년 전만 해도 흔했던 값이었지만, 2015년 소줏값이 인상되면서 4천원짜리 소주가 등장했고, 지금은 5천원 아래 소줏값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서울에서 비싼 곳은 7천~8천원까지도 받는다. 과거 푸짐했던 갈비탕 한 그릇 사 먹었던 가격이 이제는 소주 한 병 겨우 사 먹을 정도로 물가가 상승했다는 의미다. 소주가 '서민의 술'이란 표현도 옛말이 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2022년도 주류산업정보 실태 조사' 보고서와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주류 출고금액은 전년보다 12.9% 증가한 9조9천70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에 기록한 직전 최대치인 9조3천616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역대 최대라고 한다.
주류 출고금액은 2015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며 2020년 8조7천995억원까지 줄었다가 2021년 8조8천345억원으로 소폭 늘며 증가세로 돌아선 뒤 2022년 급증했다. 주류 출고금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은 2021년부터 맥주와 소주 등 주류 출고 가격이 일제히 인상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 주류 제조사인 하이트진로가 2022년 2월 참이슬 후레쉬 등 소주 제품 출고 가격을 평균 7.9% 인상했고, 롯데칠성음료는 바로 다음 달 처음처럼 등 일부 소주 제품 출고 가격을 올렸다. 주류 업계가 릴레이 인상을 이어가자, 식당들은 1천~2천원을 쉽게 올렸다. 이렇게 올라간 소줏값은 출고가 인하에도 쉽사리 인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식당가 소줏값이 최근 변하고 있다. 소주 한 병당 3천원도 아닌 2천원 소주마저 쉽게 볼 수 있다. 온라인 검색 창에 '거주 지역과 소주 2천원'만 쳐도 어느 가게가 싸게 파는지 검색이 될 정도니 확인해 보시라.
이들 식당 주인이 소줏값을 절반가 이상 낮춘 대표적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다. 고물가에 지갑이 닫히고, '혼밥', '혼술'이 확산하자 주류 마진을 포기해서라도 손님들의 발길을 잡으려는 식당 주인들의 결단이 반영된 결과다.
한 식당 주인의 토로는 이랬다. "고물가 속에 매출이 하락하며 가게 월세 마저 내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술값은 포기하고, 고깃값이라도 받아야 가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물가에 질린 절박한 식당가가 고육지책으로 살길을 찾아 움직인 셈이다.
'경기가 힘들어지면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진다'는 말이 있다. 불황기, 여성들이 원단이 적게 들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니스커트를 선호한다는 의미였다. 지금은 경기가 힘들어지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서민 술값마저 떨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진풍경이다.
/김연태 지역사회부(부천) 차장 kyt@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