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미작동 '임의조작' 때문
당시 근무자 '연동 정지 버튼' 눌러
오작동 설비 교체 등 제도개선 필요
인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의 임의 조작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임의 조작이 '안전불감증'에 의한 것일 수 있다며 이를 막을 방법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천소방본부는 "화재 발생 후 아파트 관리사무소 야간 근무자가 '준비작동식' 밸브 '연동 정지 버튼'을 눌러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지난 9일 발표했다. → 표 참조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 있는 이 아파트에 설치된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는 화재 감지기 2개가 연기 등을 감지하면 신호를 보낸다. 이후 밸브가 자동으로 열리면서 비어 있던 배관에 물이 공급되고, 헤드로 분사된다. 연동 정지 버튼은 밸브가 자동으로 열리는 것을 막는 장치로, 화재 설비 정비 등의 상황을 제외하면 눌러서는 안 된다.
앞서 소방당국은 이달 1일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와 관련해 발화 지점(전기차) 주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고, 작동 기록 등이 남는 화재 수신기를 확보해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 당일 오전 6시9분께 수신기로 화재 감지 신호가 들어왔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가 연동 정지 버튼을 누른 기록이 확인됐다. 이후 5분 만인 오전 6시14분께 이 관계자가 연동 정지를 해제시켰지만, 이보다 2분 앞서 화재 발생 구역의 중계기 선로가 고장났다는 신호가 기록됐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구역에서 소화설비 전기 배선 일부가 손상돼 고장 신호가 남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천소방본부 관계자는 "화재 후 스프링클러 연동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발화 지점 인근 전기 배선의 문제가 생기기 전에 스프링클러로 물이 분사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재 당시 미작동한 발화 지점 인근 스프링클러는 지난 6월 아파트 관리업체가 진행한 자체 점검에서 "이상이 없다"고 소방당국에 보고된 만큼 누군가 스프링클러를 임의로 껐을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8월8일자 8면 보도=전기차 화재 아파트 미작동 스프링클러, 두달 전 점검땐 "이상無")
전문가들은 수신기를 통해 화재 신호를 확인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가 감지기 오작동을 의심해 밸브가 열리지 않도록 연동 정지 버튼을 눌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는 일단 밸브가 열려 배관에 물이 채워지면 물이 곧바로 쏟아지기 때문에 정황상 관리사무소 관계자가 폐쇄회로(CC)TV 등으로 화재를 확인한 뒤에 연동 정지를 해제시킨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감지기 오작동으로 화재 경보음이 울리지 않도록 관리실에서 스프링클러를 임의로 꺼두는 사례는 더러 있다. 2018년 9명의 사망자를 낸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세일전자 화재 당시에도 경비원이 화재경보기를 꺼 피해가 커졌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오작동 사례가 잦다는 이유로 화재 신호가 감지됐는데도 소방 설비를 임의로 껐다면 이는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이라며 "점검 과정에서 로그 기록 등을 통해 스프링클러의 임의 조작 여부를 확인하고, 오작동이 잦은 설비는 교체하도록 유도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방당국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 진술 등을 확보해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위반 사항에 대해 조치할 방침이다. 소방시설을 임의로 폐쇄·차단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