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잡지에 '결사대장' 유봉진
'3·1운동' 기고 발견… 시위 상황 학계 주목
자료 발굴 유부열씨 "중요부분 밝힐 단서"

유봉진 지사가 1955년 재경 강화학우회가 발행한 '내고향 제2호'에 기고한 수기 '3·1운동과 나' 사본 앞부분. /유부열씨 제공
유봉진 지사가 1955년 재경 강화학우회가 발행한 '내고향 제2호'에 기고한 수기 '3·1운동과 나' 사본 앞부분. /유부열씨 제공

3·1운동이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던 1919년 3월18일 인천 강화도의 '강화만세시위'에서 2만여 군중을 이끈 독립운동가 유봉진(1886~1956)의 수기가 최근 발견됐다. 강화 3·1운동사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단서'도 담겨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강화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있는 유부열씨는 1955년 11월30일 재경 강화학우회가 발행한 잡지 '내 고향 제2호'(개인 소장)를 최근 발견했는데, 이 잡지에는 당시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유봉진이 기고한 '3·1운동과 나'라는 글이 수록됐다.

강화 만세운동을 다룬 기존 자료와 책은 모두 유봉진을 중심으로 서술됐다. 유봉진은 강화 지역 각계 인사들과 접촉하며 만세 시위를 계획했다. 그는 만세 시위 때 '결사대장'이라고 쓴 태극기를 두른 채 말을 타고 선봉에 선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유봉진에 대한 기록은 만세 시위로 체포됐을 당시 일제의 신문조서와 판결문 외에 현재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독립운동과 인천·31> 결사대장 유봉진과 강화 만세운동
유봉진 지사. /출처 '인천인물100인'

이번에 발견한 유봉진 수기는 강화 만세운동을 최초 계획하게 된 과정부터 만세 시위 당시 상황까지 상세히 기록했다. 대부분 내용은 기존 나온 자료·책과 유사하지만, 만세 시위를 처음 계획한 과정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담겼다.

유봉진은 해당 글에서 "어느날 경성에서 조종환씨가 서울에서 연락을 받고 나와 황충진(황윤실), 황통문(황도문), 류희철(유희철) 등은 길상에서 비밀회의를 갖고 강화읍의 하운혁(윤인혁)을 만나 대체 준비를 마치었다"고 했다.

만세 시위가 강화도 내부가 아닌 서울 쪽에서 기획해 촉발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일제의 강압적 조사 과정에서 나온 내용이 아닌 유봉진이 해방 이후 회고록 성격으로 쓴 글이라서 신빙성이 더 커 보인다.

자료를 발굴해 분석한 유부열씨는 "강화만세시위는 조종환 등을 통해 서울의 어느 조직화된 쪽에서 기획했고, 강화지역 각계 인사들이 이에 호응해 전국적으로도 큰 만세운동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유봉진 수기는 강화 3·1운동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새롭게 밝힐 수 있는 단서"라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