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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2016)'에는 '카카듀' 간판이 내걸린 경성 거리가 등장한다. 카카듀는 1928년 서울 종로 관훈동에 한국인이 처음 차린 서양식 다방이다. 나운규의 스승인 영화감독 이경손과 오촌 조카 현앨리스가 함께 운영했다. 카카듀는 커피를 마시면서 나라밖 세상의 정보를 공유하고, 시대적 각성과 계몽을 논했던 당대 독립운동가·예술인·지식인들의 아지트였다.

6·25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커피는 1955년 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1970년 당시 다방 커피 한잔 값은 노동자 일당과 맞먹는 50원이었지만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뜨거웠다. 동서식품은 1970년 인스턴트커피를 출시한데 이어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까지 개발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최적화된 커피 자판기도 일상을 파고들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오픈했고, 2000년대 들어 무수한 브랜드가 쏟아지면서 바야흐로 커피전문점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최근 원두 100g당 140만원짜리 커피가 한국에 상륙해 떠들썩하다. '커피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싱가포르 '바샤 커피' 국내 1호점이 서울 청담동에 오픈했다. 2개 층 약 380㎡(115평) 규모의 매장은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오리지널 커피룸을 오마주해 화려한 궁전을 연상케 한다. 가장 비싼 메뉴는 커피의 본고장 브라질 '파라이소 골드 커피'라는데, 원두 100g당 140만원의 주인공이다.

커피룸에서 마시면 한 잔에 48만원(350㎖ 기준), 테이크아웃하면 20만원이다. 슈퍼리치들이 사고파는 아파트 값이 100억원 천장을 뚫었다지만 커피값치곤 초현실적이다. 발빠른 한 유튜버가 솔직한 커피 시음기를 공개했다. "커피 원두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로 머릿속에서 표현할 수 없었다"며 "커피향은 아주 은~은한 페브리즈향(?), 맛은 메가커피 조금 옅은 맛이다"라고 직설해 웃음을 자아낸다.

소비 트렌드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한 번뿐인 인생 폼나게 지르고 사는 욜로족과, 필요한 것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요노족이 동거하는 시대다. 커피를 벗 삼았던 베토벤은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커피빈 60알은 60가지의 영감을 준다"고 예찬했다. 과연 140만원짜리 원두로 만든 하이엔드 커피는 몇 가지 영감을 줄지 궁금하다.

/강희 논설위원